1. 천국의 증인
해마다 9월이 되면 저 대자연의 풍요한 결실과 함께 우리에게 신앙의 결실을 가능하도록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복자성월」이 시작된다. 교회의 이 고맙고도 슬기로운 배려는 모든 신자의 가슴깊이 복자들의 용덕(勇德)을 심어주고 그 뜨거운 신앙의 힘으로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기위한 것이다.
그 옛날 우리의 복자들이 얼마나 큰 신덕(信德)의 힘으로 말할수 조차 없는 참혹한 박해를 받아 냈는가에 대해서는 다시 새삼스럽게 말할것도 없다. 신유(1801)박해를 비롯해서 기해교난(己亥敎難)(1839) 병오(丙午)(1846) 교난(敎難) 그리고 대원군에 의해 병인(1866) 대교난 등을 겪는동안 얼마나 많은 선현들이 피로써 신앙을 지키며 끝까지 주님의 부활을 증거했던가! 우리나라는 순교자의 피로써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말은 조금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우리 교회는 본질적으로 종말론적 증거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들 복자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가장 명확한 증인들이다. 목숨으로서 증거하는 것보다 더 크고 확실한 증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자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은 이루 다 필설(筆舌)로 할수 없으며 또한 복자성월에만 한해서 공경을 들인다는 것은 더욱 안될 말이다 우리의 생활안에 항상 복자들의 열애(熱愛)와 그 불타는 신앙을 본받겠다는 마음이 깃들어 있어야 할것이다.
2. 죽음을 각오한 순수성(純粹性)이!
그런데 대체로 우리는 무슨 성월이 되면 겨우 그 성월이 강조하는 것을 생각하는 수가 많다. 성월이란 평소에 늘 생각하고 실천하던 것에 대해 다시 한번 더 큰액센트를 주어 특별행사를 겸한 「달」로 삼자는 뜻이지 결코 잊었던 것을 다시 회상하자는 뜻은 아닐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복자성월까지도 형식적으로 복자에 대한 기념행사나 하는 달로 생각하기 쉽다. 그것은 진정 복자들 뿐아니라 순교하신 모든 분들에 대한 크나큰 결례요, 우리의 신앙이 어딘가 잘못된 점이 있음을 뜻한다.
과연 우리의 신앙은 순수성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은 자주 행해져야 하며 항상 자신안에 순수치 못한 점이 있는가를 되풀이해서 반성하는 것은 현대에 사는 신자인 우리에겐 필요불가결의 것이라 할것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 어둠의 아들은 빛의 아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경고하신바를 생각할때 더욱 그 반성은 절실하게 요구된다. 과연 우리에게는 죽음을 각오할만한 신앙의 순수성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아니 오늘날에는 죽음까지는 요구하지 않고있다. 우리의 선열들은 죽음의 요구에도 조금도 주저없이 응하였는데 오늘의 현실은 우리에게 죽음까지는 요구하진 않는다. 다만 성실하고 순수한 신앙과 그에 따르는 사랑의 행위만을 요구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나도 우유부단하며 너무나도 쉽게 사회의 불의와 타협하며 심지어는 권력에 영합하거나 물질의 예속자(隸屬者)까지 되고있는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복자성월을 기해서 우리의 신앙의 자세를 바로잡아 순수성을 지닌 참된 신심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바로그것이 복자성월을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맞이하는 것이 될것이다.
3. 일치를!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은 「두려움을 모르는 복자」에 비해 너무나도 비겁한 우리의 현실의 큰 원인의 하나는 우리에게 일치의 정신의 결여라 하겠다. 지난 제2차 「바티깐」공의회는 무엇보다도 이 일치를 강조했다. 우선 주교들 상호간의 일치 주교와 사목와의 깊은 일치 사제들 상호간의 일치, 사제와 신자들 신자들 상호간의 깊은 일치의 유대에 대해 공의회는 「형제애」를 소리높이 외쳤다. 사제들의 개심 신자들의 새로운 개심 전 민족의 개종 ! 이것이 공의회가 당면목표로 하는것이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현대적 복자들을 요구하고 있다.
참으로 현대처럼 복자가 요구되는 시대도 없을것이다. 공의회가 끝날무렵께 현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포스트 카운실(공의회 이후)의 성공을 위해 무수한 성인(聖人)이 나올것을 호소한바 있었다.
즉 『크리스찬의 모범으로 공의회의 선언을 충실히 실천하기 위한 무리가 배출되도록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일치」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거듭거듭 강조하셨음을 잊지말아야 하겠다.
복자성월에 즈음하여 다시 한번 이 말씀을 상기하고 더욱 뜻있는 성월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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