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여행을 하면 도시에서는 듣기 어려운 소박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된다.
작품이 될 만한 소재도 많다.
취재 의욕이랄까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 대로 기록해 두는 것은 나의 버릇이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한 개 노트가 되는 것이다.
긴 세월이 지난 뒤 이 노트들을 다시 들추어 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당시의 취재 대상을 다룬 견해에 불만을 가진다.
용팔이 할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다.
일 년 내내 온 몸에서 술 냄새를 풍기며 돌아다녔다.
술을 마시지 않은 때라도 그 목소리는 주정뱅이 같았다 한다.
남편이 술만 마시고 집안일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아내 되는 사람은 쉴새없이 일을 해야만 했다.
그는 근면하고 인내심이 있는 반면 성격이 과격하여 남편뿐만 아니라 온 집안 식구를 들볶았다.
어느 겨울날은 술이 취해 쓰러져 자는 영감님의 겉옷을 벗기고 방망이로 때려 밖으로 내쫓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누라의 임종 때 유언이란 것이 기묘했다.
『내가 평소에 당신의 술 마시는 것을 방해해서 미안하오. 내가 죽은 뒤에는 마음대로 술을 마시고 남은 생을 즐겁게 보내시오.』
하고 진심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감님은 아내의 유언대로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시각부터 술을 끊고 아내 대신 가사를 돌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이야기를 소설화한 일이 있다.
주인공인 영감님이 일은 하지 않고 술이 취해서
『나는 이 세상에 손님으로 온 사람이다. 손님은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기분 좋게 놀다 가야 한다』
하고 뽐내며 마을 안을 휩쓸고 다니는 것을 그렸다.
어떤 집에 갔다가 자기가 예기했던 만큼 우대를 받지 못하면 화를 내고 돌아온다.
그 같은 이야기를 가볍게 묘사했다.
그러나 내가 지금 같은 소재를 작품화한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 인간이란 결코 신의 향연에 초대되어 온 손님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강조할 것이다.
이 세상은 향락의 세계도 아니고 향연의 자리도 아니다. 인생은 그 같은 이기주의자들에게는 그 진실도 의의도 결코 제시해 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옛 수첩을 뒤적거리는 것은 흥미 있다. 그러나 자신의 사상의 변천을 살펴보는 것은 더군다나 흥미 있는 일이다.
▲본란을 맡아 수고해 주신 양한모 씨가 지난호 5회로 끝내고 이번호부터 작가 장덕조 여사가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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