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에의 느낌은 마치 바닷가에 앉아 진종일 모래를 움켜 쥐어도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그처럼 막연하고 허망한 것이다. 이렇게 막연한 죽음인데도 죽음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육친의 실재를 마치 지우개로 칠판의 글씨를 지워 버리듯 내 앞에서 영원히 지워 없애 버린다.
또한 장차 나 자신 그런 죽음을 통해 이 확실한 세상에서 그렇도록 막연한 피안으로 던져질 운명에 있는 것이다. 어떤 영국의 사실주의 작가가 죽음을 체험하기 위해 나무 더미 위에 올라앉아 밑에서부터 불을 지르게 했다. 그리고는 불에 타 죽기 직전까지 그 스스로 기록이 가능한 때까지 죽음에 이르는 순간순간을 기록하고 죽었다고 한다. 대체 그 죽음에 이르는 상황이나 상태 즉 육체의 고통과 심리적인 공포가 인간의 죽음에 혹은 삶에 무슨 보탬이나 가치가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죽으면서 그 제자 심미아스더러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참 철인은 늘 죽는 일의 실천에 몰두하며 따라서 모든 사람 가운데 죽음을 가장 덜 무서워하는 자일세』일견 소크라테스의 이 말은 죽음을 순간순간 체험하여 기록으로 남긴 그 영국의 사실작가와 비슷한 느낌이다. 허나 소크라테스는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라고 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영혼의 순화를 위해서 항상 육체로부터 해탈을 거듭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의「죽음의 실천」이란 바로 이 육체에의 해탈을 위한 삶의 진력이며 최선인 것이며 따라서 이는 육체의 공포, 곧 육체의 본능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죽음은 두려울 것 없는「삶의 연속」. 이거야말로 죽음 그 자체에 집념하는 죽음의 공포와는 얼마나 먼 차원에 있는가?
독일의 한 작가가 쓴「파비안」(주인공)은 거의 천부적인 성실성과 예리한 지성의 소유자로서 전후 독일의 무지한 사회적인 부패와 모순 속에서 의식의 저항을 느끼면서 자기를 고수한다. 그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현대의 부조리 속에서 절망하고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로에서 물에 빠진 한 아이를 건지려다 익사하고 만다.
그 숱한 청춘의 오뇌 사색, 저항, 지성이, 한적은 생명을 구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물 속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파비안이 물에 빠지던 순간 그는 그 자신의 야망, 꿈, 고뇌 등 모든 인생에 대한 미련을 계산했을까? 그는 그 순간 하나의 생명을 향해 죽음에 대한 공포나 삶에 대한 의식조차 없이 충동적으로 자기를 투척했을 것이다.『단 하나 남은 자살을 아껴서…』어디엔가 이런 시구가 있지만 파비안도 스스로 목숨을던진 의미에서는 분명 자살이지만 보람도 없는 삶을 아끼며 야금야금 빼앗기며 살기보다는 그 삶이 보람에 절실하면 절실할수록 어떤 절대의 의미를 향해 한 순간에 던져 버릴 수 있는 생이야말로 인간이 순간에서 영원으로 살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대통령이 되는 것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것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수단일 뿐 죄수든 미치광이든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기의 운명을 완전히 다 사는 것 그것이 문제다』라는 헷세의 말에 수긍이 가지 않는가.「죽음」에 있어 베르나노스를 빼놓을 수 없다. 대인관계에서 객관화된 그의「시골 본당신부」는 그렇게도 겸허하고 소박하고 순수할 수 없고 또한 인간적이다. 그러나 그는 내적으로 참담한 영혼의 시련을 겪고 있다. 그는 마치 한 가닥 빛도 볼 수 없는 악령처럼 암담한 영혼의 무진장한 미로를 헤매면서 고토하지만 정작 그는 향방도 없는 신을 찾아 엎디기보다는 꼿꼿이 마주 응시하고 있는 느낌이다.
거기다 그는 가끔 무지한 육체의 고통마저 느끼고 결국 암이란 선고를 받는다.『나는 죽음이 무섭지 않다. 그것은 생명이나 마찬가지로 내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된다.』평소 그렇게 부르짖던 그가 죽음의 선고를 받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린다. 아, 이 빛나는 태양, 이 환한 길, 이 언덕 어느 것 하나 새롭지 않는 것이 없고 이렇게 애틋할 수가 없구나! 그는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인간의 한계, 육체의 한계를 깨달을 수밖에 없지만 다시 그것을 넘어서서 자비로운 신에의 인간 귀의를 깨닫게 된다. 그는 마지막 종부성사도 못 받고 친구의 누추한 하숙방에서 객사하며 마지막 말『이것이 다 은총일세』한다. 이 마지막「은총의 빛」은 그에게 있어서 그처럼 참담한 영혼의 투쟁 신앙의 추구가 없었던들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결국『인간은 기도에서 환멸을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외롭다는 인생을 외롭지 않게 흐뭇하게 살고 가게 해 준 여러분께 감사합니다』故 마해송 선생의 최후의 말, 진실로 사랑하지 않았던 자가 외로운 인생에서 이토록 흐뭇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인간은 왜 죽어야 하나』또『죽으면 어떻게 되나?』묻기보다는『어떻게 죽어야 하나?』더 나아가서는『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며 그삶을 성실히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기도하듯 경건히 아낌없이 살았을 때 죽음은 자연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와「삶의 연장」으로서 하나의 경험의 연속으로 우리를 스쳐갈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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