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목요일 교황 바오로 6세는 바티깐을 떠나 비행기로 필립핀의 수도「마닐라」에 도착함으로써 우리 한국에서는 가장 가까운 곳으로 오게되며 12월 3일에는 더욱 가까운 홍콩에까지 오게 된다. 비록 우리나라까지 오지 않는 데 대해서 서운한 마음을 금치 못하기는 하지만 진심으로 교황의 극동아시아 방문을 환영하며 교황의 안전한 여정을 기원하는 바이다. 이젠 6대륙에 걸쳐 교황 바오로 6세가 가보지 아니한 대륙이 없다. 마치 바오로 사도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육로와 수로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천 리 수만 리를 다닌 것처럼 교황 바오로 6세도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다. 교황은 자신의 여행을 항상 순례라 부르지만 예수님의 발자취를 찾아 빨레스띠나에 여행한 것 외에는 모두가 순례라기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선교사의 길이라고 보아야 마땅할 줄 믿는다.
사실 지금 이 지구상에 가장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이 극동아시아 지방이다. 그리고 또 앞으로의 전교 전망도 그렇게 밝지 못하다. 이미 수천 년의 비크리스찬 종교생활의 전통이 자리잡고 있는가 하면 많은 국가들이 후진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경제 개발에만 전력을 기울여 정신문제는 도외시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20세기의 복음은 어떻게 전해져야 할 것인가? 경제와 사회 개발과 병행하지 못하는 복음은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교황이 도착하기 전에 아시아 주교들이 모여 개발문제를 연구하고 또 학생 지도문제를 토의하게 되는 것으로 안다.
물론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보지만 개발이란 연구만으로 그쳐서는 소용없는 일이고 국가와 국가 간에서 이룩하지 못하는 경제 협조가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본당의 빈부 차, 교구의 빈부 차, 국가 교회의 빈부 차가 없을 순 없겠으나 이러한 기회에 가난한 자에게 시선을 돌리고 애덕의 손을 구체적으로 펼 수 있도록 한다면 교회는 아시아에서도 개발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며 이것은 교회에도 유익할 것이라 여겨진다. 어쨌든 사랑으로 실천되는 국가 개발의 공헌이 없다면 복음의 씨가 이 땅에서 자라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복음 전파에 목적을 둔 이번 여행에 교황이 선교의 수호자 프란치스꼬 사베리오의 축일인 12월 3일을「홍콩」에서 지내게 되는 것은 의의 있는 일이라 보겠다. 현대 우리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중대한 과업은 바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건설하는 것이니 만큼 교황의 뜻을 따라 우리도 이 임무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황의 극동아시아 방문을 환영하는 우리는 교황께 대한 우리의 존경심과 우리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나타내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교황이라면 우리에게서 대단히 멀고 또 교회의 볼 수 있는 으뜸으로서 거의 신격화해 온 경향이 있었으나 故 요한 23세가 바티깐 영토를 떠나 여행하기 시작한 후로 부터 우리는 교황께 대한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고 교황의 인간성에 더 치중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러나 이러한 친근감이 불순하고 무례한 행동으로 변할 때 우리는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외국 소식통에 의하면 가끔 이러한 행동이 유발되며 그 예로 얼마 전 일반 알현에서 교황께 투석했다는 사건, 또「베드로」대성전 광장에서 교황의 정오 강복 때「데모」를 벌였다는 것 등이 있다. 더구나 이번 필립핀 방문 때에도 일부에서는 데모를 벌이려는 음모가 있었다니 우리는 참으로 교황께 대한 불경과 더불어 교회에 대한 무모한 태도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필립핀인들에게 교황께 대한 무례가 없기를 당부하고 싶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현대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 또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불화에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가난에 쫓겨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신자, 복음을 모르고 아직도 교회 밖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 인위적 산아 제한을 실천하여 양심의 가책으로 교회를 멀리하는 가정, 받은 성소에 충실치 못해 탈락되는 사제나 수도자들, 지방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열과 투쟁, 그칠 줄 모르며 반복되는 전쟁과 불의, 이 모든 것이 교황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는 것은 교황의 연설을 들을 때마다 느낄 수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적으로 친근해진 교황께 대해서 우리는 더 큰 사랑을 표시하여야 할 것이며 교황께 대한 존경심은 바로 교회에 대한 사랑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교황의 안전한 여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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