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벌써 오래 전 얘기가 되겠다. 소학교 일 학년 땐데 어느날 어머니는 담임선생님을 대접하고 싶으니 꼭 모시고 오라는 당부였다. 나는 먼발치서만 뵙던 선생님과 손을 잡고 교문을 나설 나를 상상하면서 어찌나 좋아했던지 그날 오전 수업은 들뜬 마음 때문에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선생님이 잡무를 다 마치실 때까지 교무실 밖에서 추위도 잊은 채 꽤나 오랜 시간을 참고 기다린 기억이 난다.
또 중고등학교 시절은 선생님들이 대개 연세가 많으셨는데 그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단아하신 표정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고 한마디 한마디 말씀들은 지혜와 사랑의 결정들이었기에 우리는 어떠한 권력과 지위를 가진 관료들보다 우리 선생님을 더 위엄 있는 분으로 존경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들도『선생님 그림자도 밟아선 못 쓰느니라』라고 노상 우리들에게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도록 배려해 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기에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다. 아무튼 선생님들은 훌륭하셨고 우린 그 말씀에 따르는 학생이 되는 것이 기쁨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기억들은 한낱 전설로서 우리 현실에서 영영 후퇴해 버리고 만 것일까? 요새 아이들은 더 이상 선생님을「선생님」으로 존경하지 않는단다. 모든 가치 기준이 화폐로 바뀌자 학부모님들도 선생님을 화폐로 환산해 버렸고 매스콤은 몇몇 사람의 비위나 탈선을 전 교사의 그것인 양 과장했다. 사회는 교사들을 교단에서 끌어내리려 격하시켰고 주먹질을 해댔다. 이것을 가정에서 본 아이들은「선생님」이란 형편없이 약한 존재요 못 믿을 위인들로 보게끔 그릇 인도된 것이니 학부모들의 교사에 대한 불신은 학생들의 선생님에 대한 거부현상으로 나타났고 그런 상황에서 교사는「선생님」되기를 단념하도록 강요, 당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자, 이제 교사 없는 사회에서 스승을 잃은 사회에서 누가 저 아이들에게「사람 되기」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할아버지가 손자 보는 앞에서 그 아비를 꾸짖으면 장차 손자는 그 아비의 말에 거역할 것이요, 사회가 교사 꾸짖기만 일삼는다면 아이들은 선생님 말을 거역할 것이다.
그런 사회에 교육은 부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사회여! 이제 그대는 그대의 자녀를 훌륭히 키우기 위해서라도 선생님 그림자는 밟아도 좋으니 그 발등까지 짓밟으려 들진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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