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난 남편과 가장 가까운 친구의 한 분인 M 박사가 돌아가셨다. 그 분은 유명한 의사고 평소 건강에 몹시 유의하던 이였다.
그때 나는 마침 한솔 선생 내외분과 해인사에 가 있었는데 신문에서 부고를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급히 서울로 돌아와 M 선생 댁으로 찾아갔을 때 과연 그분은 안 계시고 유영앞에 촛불만이 펄럭이고 있었다.
나는 이 세상의 가장 평범하고 가장 어리석은 여인의 한 사람처럼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죽음이란 먼 거리에 있는 사실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 바로 내 옆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것은 내일 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일이다. 당금한 이 순간, 호흡지간의 일인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인간의 앞에 가장 절실한 명제가 될 수 있는 것은 곧 자기 눈 앞에 다가왔을 때 뿐인지도 모른다.
『죽음』
나는 바쁘게 이 문제를 풀어 보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죽음과 언제나 마주 서 있으면서 형이하학적인 의미에서나 정신적 의미로서나 별반 깨달아 아는 바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하여 각각 그 나름의 해석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과연 죽음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불가피하고 불명한 것이며 내 마음 속 공포감도 그런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어둠을 두려워하는 백치아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은 언제나 두려움을 상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게 영세를 베푸신 정 바오로 신부님께서는 이 방황하는 한 여인의 안타까움에 대답하여 죽음이란 신이 인류에게 내리신 형벌이라고 일러 주셨다.
나는 몹시 감동했다. 그 같은 말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하긴 이 세상의 돌멩이 하나도 무의미하게 존재하지 않거든 개미 한 마리 나뭇잎 하나에도 한없는 신의 섭리와 비밀이 간직되어 있겠거든 어찌 인간의 눈물, 마지막 신음성 더군다나 이 세상을 하직하는 최후의 호흡에 그 뜻이 없을 것이랴.
그러기에 신은 인간의 한 사람이 단말마의 고통할 때마다 우리들 인간과 함께 그 괴로움을 함께 감당하고 계신지도 모르는 것이다. 금년 들어 문단에 시인과 소설가들이 특히 많이 죽어 갔다.
그들은 생전에 죽음을 노래했고 이것을 문장으로 표현해 왔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는 아무 안도도 없이 끝내 달관도 하지 못한 채 그 불명하고 불가해한 곳으로 가버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친한 이들의 부음을 접할 때마다 그 의미를 찾아보려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과 함께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정답게 대하고 싶은 마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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