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외투가 지나치게 무거워 보이던 것도 며칠. 날씨는 갑자기 얼어붙어 버렸다. 어느새 성탄 카드와 새해의 달력들이 점두를 장식하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좀 더 바빠 보인다.
한 해가 막바지에 이르는 동안 나도 나날을 엮어 가노라고 무척 바빴었다.
문득 달력의 마지막 장을 젖혀야 할 때쯤이면 웬일인지 한 번 발을 멈추고 잠깐 머무르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낀다.
분주를 피해 멈춰서는 순간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 몹시도 바쁘던 나는 무엇을 이루었단 말인가. 마치 흥청거리던 잔치가 끝난 뒤처럼 공허함이 밀려옴을 느낀다.
예고도 없이 현재가 쏟아져 버리고 손이 텅 빈 것을 느끼는때. 추수가 끝난 지도 오랜 늦가을의 들판을 보듯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 새로 찬바람이 읾을 보듯 내 마음 깊숙히도 싸느라니 바람이 지나간다. 가진 것이 없고 이룬 것이 없이 초라한 나를 보고 나의 빈 마음을 특별히 의식하는 때다. 빈 손을 가만히 주먹쥐어 본다. 빈 마음에 가만히 귀기울여 본다. 와락 채워지기를 바라는 그리움이 있다.
이때는 대림절이 시작하는 때. 가난한 마음으로 구세주 오시기를 기다리던 우리의 선조대대, 동서고금의 인간의 기원이 마치 하나의 조그만 마음 귀퉁이에 집약되는 듯함을 느낀다.
『하늘은 위로부터 이슬을 내리우고 구름은 의인을 비 같이 내려보내고 땅은 열리어 구세주가 나게 하라』기다림의 외침이 빈 마음에 울린다. 그 허허로움에 조용히 몸을 맡겨 있노라면 새삼스레 가까이 있는 이를 만나고 싶어진다. 여태 눈이 가려 알아보지 못했던 다른 이의 빈 마음을 행여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어쩌면 바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도 있지 않을가? 어쩌면 우리는 서로서로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알아보지 못했던 이웃의 깡마른 손이라도 꼬옥 움켜쥐고 싶고 가난한 마음을 달래지 못해 하는 이에게 나의 찬 손이나마 내밀어 주고픈 마음이 대림절의 마음이 아닐까? 속마음의 불꽃이 식지 않는 한 손의 차가움에 온기가 스밀 것을 믿으며….
우리는 모두 기다리는 가난한 마음들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