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축일 일주일을 앞두고 대도시의 거리와 상점은 화려하게 꾸며지고 온통 축제의 기분으로 들떠 있으나 농촌과 어촌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볼 수 없고 그저 매일 같은 가난의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성탄 때를 맞이하면 많은 단체나 그룹들은 고아원이니 양로원이니 병자들이니 나환자들이니 불쌍하고 외롭고 가난한 자들을 찾아 선물을 들고 위문 가는 것을 상례로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기관에서는 위문품을 얻으려고 여기저기를 찾아다니게 된다. 아기 예수가 탄생한 날을 기념하는 이 축일에 이와 같이 서로 서로를 생각한다는 것은 불공평하고 사랑이 결핍된 이 세상을 좀 더 공평하고 사랑스러운 세상으로 만들자는 노력으로 장려하고 권장하고픈 마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가난한 자를 위한 애덕행위의 본뜻을 찾아보며 현재 실행되고 있는 이 관습에 고칠 점이 무엇인가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는 흔히 남에게 애긍시사하는 것을 적선한다고 한다. 즉 공을 쌓기 위해서 자기의 소유 일부를 희생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난이 동정심을 자극하여 불쌍한 마음이 일어났기 때문에 돈이나 물건을 바치는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둘 다 정당하고 타당한 이유가 되겠으나 아직도 이기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애긍시사나 남을 도와 주는 일을 정의에서 발생한 의무로서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남을 위해서 자기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실행치 않으면 대죄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 사회의 재물은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서 모두가 인간 구실을 할 수 있고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아야 한다. 만일 나는 먹고 남는 것이 있지만 이웃은 굶주린다면 남은 것은 내 것이 아니라 벌써 이웃의 것이고 이웃의 것을 돌려 주지 않는다면 불의를 범하는 것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웃을 돕는다는 것을 사랑의 행위로 생각하기 전에 정의의 임무 수행으로 생각해야 마땅할 줄 믿는다.
유럽의 산업혁명 당시 노동자들은 실상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고 저임금에다 미성년자의 노동, 노동환경 불순 등 무수한 노동자들이 자본주들의 착취에 유린되었었다. 따라서 빈부의 차도 극도로 심했었다. 이때 가톨릭 신자 중 몇몇 뜻있는 인사들은 노동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자선사업에 나섰었다. 처음엔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제 몫을 찾아 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자본주들에게 사랑과 동정에 호소하면서 모금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에게 제 것을 찾는 권리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듣고 노동운동에 나섰던 것이다. 이 움직임의 선구자로는 프랑스의 알베르 더 먼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여기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부정부패가 범람하고 빈부의 차가 격심한 이 땅에 성탄절을 맞이해서 위문품을 보내고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보는 것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애덕의 행위라 생각지 말고 정의가 요구하는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의 행위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남을 도울 것인가? 여기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어떻게 공평하게 분배하는가가 문제이다. 위문단이 조직되고 위문품이 준비되면 위문의 대상을 찾기 마련인데 이것을 각자 제 멋대로 결정하다 보니 몰리는 곳으로만 몰리고 전혀 혜택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또 위문품의 질의 차이가 심한 데서 오는 문제도 있다. 한 어린 여학생이 손수 뜨개를 해서 쉐타를 짜 갖고 성탄이라 고아원을 방문했는데 마침 어떤 부인이 고급품만 사 갖고 와서 선물하는 바람에 자기 쉐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웃을 돕는 데까지 빈부의 차를 드러내고 부의 위세가 판을 친다면 이것도 곤란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각 교구마다 성탄 선물 취급소를 차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때에 따라 필요에 의해 성탄 선물을 위한 정보센타 하나쯤은 설치하는 것이 좋을 줄 믿는다.
그리고 위문품에는 정성이 들어야 한다. 형식적으로 마지못해서 해서야 되겠는가? 어디까지나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의미에서 남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것을 남에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물품을 마련하되 분수에 맞도록 요긴하고 일상행활에 필요하고 생산성이 있는 것으로 선물한다면 더욱 좋을 것은 물론이다.
1970년도의 성탄절은 정말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성탄이 되도록 우리는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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