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을 부리던 노염(老炎)도 수그러진듯 추석을 며칠앞둔 이즈음은 아침 저녁으로 소슬바람이 제법불고있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2학기 등록을 간신히 마치고 강의가 미처 시작되기 전의 캠퍼스의 어수선했던, 그래서 착 가라앉지 않고 착잡했던 심경에 쌓였던 대학시절의 기분을 생각케 된다. 엄청난 고민을 안고있는 것을 속으로 자부했던 시절, 그러나 해결과 결론에 도달한 것이라고는 없는 그런 고민,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10여년이 흘러버렸으니, 그런 시간의 흐름이란것 보다는 그렇게 애용했던 르네쌍스뮤직 홀에 이 며칠전 가앉았을때 이곳을 메운 대학생群에 어울리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 더 앉아있을수 없어 뛰쳐나온 그런만큼의 간격이 이제 뇌리에 깊은 흠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민의 줄거리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 줄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항상 부조리, 이것을 극복하기위한 결단은 어떠해야 하는가이다.
C군의 11층에 있는 사무실을 향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뒤따라 탄 40대 중반의 아주머니는 철제도시락을 가득담은 광주리를 내려놓는다. 이제 막 밥을 담아온듯 흐르는 땀을 닦는 그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먹고사는 일에 찌들기는 했어도 점심시간 전에 당도한 안도감을 엿볼수 있다. 30개의 도시락을 100원씩에 공급한다니 1개당 많이 이익을 보아야 30원이야 넘겠는가. 30원이라 해봤자 토요일ㆍ일요일 빼면 한 달 수입은? 매일 변두리에서 시내 한복판까지 저 고생을 해야하지. 어려운 일이다. 문득 그 아주머니와 지금의 나와는 천지(天地)만큼이나 차이가 있는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해봤다. 사실은 실속은 텅비었어도, 그리고 허우대만 멀쩡해 있지만 좌우간 나와는 거리가 있다고 할밖에. 가슴 아프기는 도로공사에 동원되어 날품팔이하는 아주머니들도 마찬가지다. 골프장의 훼어웨이에 가보라. 거기 필드의 잡초를 뜯어내는 일당 4백원씩 받고 뙤약볕 아래 온종일 고생하는 아주머니들 보기에도 마찬가지 심사가 들것이다 소득재분배책에도 한계는 있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그런가운데 능력껏 일해서 오는 차이는 어찌할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역사가 있고 사람이 모여사는 한 개인차는 반드시 있어온 것이다. 인간이 생각해낸 제도나 사상중에 그 원안대로 적용되어 본 것은 지금껏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령 공산주의의 교조이론대로라면 소련 등의 이른바 공산주의군에서 새로이 성장한 지배계급의 존재를 설명할수가 없을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합리적인 등차를 어떻게 한계를 지워가야하는가에 있는것이다.
만일 비합리적등차가 있다면 이것은 시정되고 개선되어야하며 이를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것이다.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를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관점에서 다루기 마련이고 누구에게나 평균적으로 재물욕과 같은 탐욕을 속마음에 갖고 있는것이라는 반설(反說)을 이제 학창을 떠난지 10여년만에 자각할수 있을것 같다.
그러나 나 자신 이런 탐욕을 억제해 가면서 그때 학창에서의 고민을 순수하게 오늘의 고민으로 이어가면서 결론과 해결에 이르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도시락 파는 아주머니, 필드와 도로공사에 동원된 이런 가슴 아픈 장면들을 연상하면서 이들을 위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생각해본다. 이 소슬바람 이는 가을에 고뇌와 사색의 깊이를 더할수 있기를, 그래서 더욱 고민하기를 기구해본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