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9일부터 3일간 「대만」보인대학에서 한국을 위시한 자유중국ㆍ일본 및 월남 등 4개국의 대표 주교들의 회의가 있었다. 이는 74년 로마에서 있을 「복음화」를 주제로 하는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에 앞서 모든 사정이 비슷한 동아 4개국의 복음화 문제에 관해서 사건검토를 하기 위한 회동으로서 매우 의의깊은 일이었다. 그 회의의 주요 의제를 보건대 아주지역(亞洲地域) 안의 청소년문제에 큰 관심을 표시하면서 그들의 급격한 서구화, 물질화로 인한 기존가치에 대한 엄청난 거리감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지도자세보다는 솔직한 대화의 길을 터놓는 것과 또 그들의 정의감과 순수한 종교관의 추구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자체의 생활쇄신이 앞서야 하겠다는데 의견을 모은것 같다.
그리고 아시아 대부분의 후진성에 의한 빈곤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는 부의 분배 등 물질적인 방법도 중요하겠으나 오히려 그에앞서 인간존엄성과 인격옹호의 기본문제에 있어서 교회의 복음적 증거가 절실히 요청됨을 강조하였다. 또 오늘날 많은문제를 내포 하고있는 사제양성의 문제에 대해 공동적으로 정보교환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신학교교수들의 대표회의를 제기한 것은 더욱 이채(異彩)를 띠운 일이었다.
끝으로 이번 회의의 가장 핵심적인 안건은 「합동신학 연구회」의 문제일것 같다. 즉 주교회의는 유교ㆍ불교 등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와 그 가치관에 대한 신학적 연구의 필요성을 재확인, 앞으로4 개국 합동신학 연구회를 주선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는 참으로 아시아 그리스도교 선교사상 획기적인 사실이다. 그리스도교가 동아시아지역에 선교된 지는 이미 몇백년의 역사를 가졌다. 그러나 아직도 이 지역 안에서는 정말로 토착화 되지 못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제2차「바티깐」공의회 이후 그리스도교의 토착화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특별히 미사전례에 있어서의 모국어 사용 등 신자들의 전례에 대한 이해와 능동적 참여에 상당한 발전을 이룩한 것을 간과할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외형적이 면에 그치고 있는 정도이고 근원적인 신학의 바탕에서 우러나오지 못한 감이 많다. 그리스도교가 진정으로 아시아적 복음의 토착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아시아 고유의 전통문화 안에서 즉 그 사상과 종교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시키고 적응하느냐 하는 기초적 신학의 바탕이 마련되어야 실질적인 토착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사실 동양 4개국은 유교의 윤리사상 불교의 종교철학이 종합적으로 그 민족들의 사상ㆍ철학ㆍ가치관 등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각 나라들이 유ㆍ불교를 도입ㆍ보존ㆍ발전하는 과정이나 양상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는하나 근본적으로 대동소이한 공통분모를 갖고있는 것이다. 극히 개관적(槪觀的)으로 볼 때 원래 유교는 인간만물의 창조 내지 주재자로서의 「천(天)」의 사상을 소유하고 있는 면에서 천왕교와 유일신론적 차원에서 일맥상통한 점을 볼수 있고 또 불교는 창조주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석가모니, 불(弗)을 구원의 근원으로 보는 면에서 그리스도교와 구원적 차원에서 흡사한 점이 없지 않다. 이에 대비해서 그리스도교는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흠숭하고 그 독생 성자이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종교로서 소아시아의 이스라엘서 삯트고 당시 유럽의 중심지였던 「로마」에서 자라고 드디어 서구 전 지역에서 발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때의 희랍철학과 「로마」문명의 영향 아래서 교리와 사상의 체계를 형성하여 전유럽의 문명ㆍ철학ㆍ사상을 지배하는 종교를 이룩한 것이다. 이와같이 동양과 서양이 량대 지역에서 한편은 유ㆍ불교의 사상과 종교로서 전통문화를 이룩했고 다른 한편은 그리스도교의 종교사상으로 모든 문화를 형성한 것이다.
그러면 이 두 지역 사이에서 문화의 근원이 되는 종교사상이 어떻게 교류되었던가? 역사를 잠깐 살피건데 동양의 것이 그리로 건너가기 보다는 서양의 것이 이리로 넘어온 것이 사실이다. 즉 그리스도교가 아주지역으로 넘어올 때 에 초대선교사들이 동양의 근본적 정신풍토를 이룩한 유ㆍ불교에 대한 사전이해가 없어 오직 유일진리에 대한 독존적 우월감에서 성급한 선교방법을 택한것이 여러 가지의 저항과 충돌을 일으켰다. 만약에 유ㆍ불교의 철학과 종교적 멘타리티에 대해 좀 더 관용적 이해가 있었더라면 불필요한 마찰과 많은 순교자를 면할수 있었을 것이다. 여하간 이번의 「합동신학 연구회」의 설치는 비록 몇백년 늦은 만시지탄(晩時之嘆)은 있으나마 지금도 일각삼추의 긴급한 과제인 것이다. 권위있는 신학자와 각계의 직자(職者)들이 원동원(援動員)되어 유종의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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