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요한 신부님 그동안 평안하신지 문안을 드립니다. 지난 12일 전국체전 입장식에 참석하러 하부(下釜)했을 때는 일정에 쫓겨서 신부님을 미처 뵈옵지도 못하고 상경케 되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날 아침에 전화를 올렸더니 벌써 입장식장으로 떠나신 뒤가 되어서 안부통화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제 딴에는 식장에서 신부님이 어디계신가 두리번거렸으나 원체 많은 인파가 몰려 들어서 모습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이곳 서울은 제가 매일 들락거리는 의사당이 있는 태평로의 가로수가 벌써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듯 가을기운이 완연해졌습니다. 정기국회의 회기가 장기이기 때문에 하부해서 체류하는 기간을 당분간 얻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정기국회는 예산안을 심의하고 법안을 다루게 되는 중요한 기간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유권자로부터 위임받은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서 전 신경을 쏟고 있습니다. 마침 기회가 닿아서 예산결산위원에 지명되었기 때문에 납세자의 인내와 정부의 지출자세에 대해서 자료를 뽑고 납세자의 원망을 알려주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정부로서는 해야 할 많은 일이 있고 재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불필요한 지출 억제에 고심하고 있는 것이 엿보입니다만 저로서는 그래도 더 줄일 것을 줄여서 아껴쓰도록 건의하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법률안으로서는 근로기준법의 미비점을 개선하는 개정안을 작성하여 제출할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현행법에는 근로자가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을 지불받지 못했을 때 사용자로부터 다른 채권자들보다 우선적으로 지급받을 수 없기 때문에 생계에 위협을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임금이란 것은 생존의 최소한의 근거가 되는 것인데도 이것을 법률이 보호하고 있지 못함으로써 오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실감해온 저로서는 이번기회에 개선되도록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선거 때 저에게 큰 격려를 보내고 성원해주신 유권자들과 여러 교우님들의 모습을 언제나 저의 등 뒤에 지고 다니는 자세로 소임을 다해야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국회에는 18명의 교우의원들이 있고 매월 모임을 갖는「데이빗드」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이번 10월 모임은 지난 화요일 오후에 장충동에 있는「분도」회관에서 신학대학 신부님 집전으로 대사를 올리고 강론을 들었습니다.「무신론의 체계」라는 주제였는데 현대인의 영적고민에 대해서 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모임은 여야의 구별이 부각되는 일도 없고 동료로서, 선후배의 입장만이 있을 뿐이며 회원 수의 증가를 통해서 복음전파의 역할을 다해야겠다는 것이 이 회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이미 상당수의 비교우 의원들이 이 회에 대해서 관심을 표명해오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두서가 없습니다만 신부님께서 가톨릭시보에 연재중인 저의 칼럼을 꼬박 읽으시고 격려해주신데 대해서 깊이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제가 칼럼을 써본 경험도 거의 없고 문장구성력도 미약해서 남들 앞에 내어놓기가 쑥스럽기 한량없습니다만 글속에 담긴 저의 사색만은 가식 없이 옮겨보려고 노력은 하였습니다만 앞으로 더욱 가다듬도록 교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원내생활과 서울살림에 익숙치 못하고 있습니다. 회기가 끝나는 데로 하부하겠습니다. 이번 주말은 사사로운 일로 하부할 예정이며 주일 미사를 서대본당에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환절기에 신부님의 건승하심을 기원하옵고 박 총무님과 여러 회장님들께 문안을 올립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기구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1973년 10월22일)
박 아우구스띠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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