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아는 벗들은 간혹 책벌레라고 이름한다. 하지만 그에겐 책으로 배를 채울만치 풍족한 서적이 없었다. 그가 손닿은 곳에 있는 책들은 거의다 읽어버린 것이다. 다만 몇 번을 읽어도 실증나지않은 <성서 (聖書) 와>벗하여 온 사전들이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을뿐.
오늘도 그는 현문사(玄文社)에서 발행한 낡고 때묻은 국어대사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아>자 줄이다.
좌우간 무슨 글자이든 읽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섬광처럼 빛나는 시선을 사전속에 박는다.
『…앵!…앵무…앵무새!』
고딕체의 활자가 그의 빛나는 눈속으로 선명하게 들어오는 그것들을 느릿느릿 더듬다가 심호흡을 거듭한다. 아니 그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앵무새>란 단어를 천천히 훑어 내려간다.
사전속의 앵무새란 앵무과에 붙은 새(鳥)로서 머리는 둥글고 웃부리는 갈구리 모양 굽고 아랫부리는 짜르며 털빛이 아름답고 사람의 말을 흉내내는 유명한 새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그 유명한 새도 기껏 사람의 뜻(?)에 의해 몇마디씩 들어두었다가 그대로 흉내내는 정도라면 그 새도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가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바로 등 뒤에서 K와 S가 입씨름이 붙은 것인지 왁짜하게 떠드는 것이었다. 아니 그 입씨름의 시초가 어디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속에는 분명히 그가 읽고있는 앵무새에 대한 토론이 아닌가 싶었다.
『…앵무새는 앵무새지 뭐야?』하고 기염을 토하는 K의 말투가그랬다. 그래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문득 귀를 세워 두 사람의 대화를 등뒤로 엿들었던 것이다.
『…남이야 듣거나 말거나 입에만 양기가 올라 주동아리를 나불거리는 놈들을 보고 말 잘하는 앵무새라고 하는 거야?』
『히야! 기가 막힌다』고 K는 발끈 화를 낼듯 억양을 높혀 말했다. 『이 바보같은 것아! 너처럼 주동아리만 살아 나불거리는 앵무새들은 근본이 없단 말이다!』
『근본?…』S도 지지않고 공박이 나왔다. 『좋아하네?…네 놈은 근본이 있어서 도 선생(절도)이 되었구나…』『도 선생이라고?…』『강 선생(강도)이라고 성씨를 바꿔 드릴까?』
『야? 임마. 그 따위 궤변은 집어치워. 도 선생이든 강 선생이든 씨알이 따로 있는건 아니야?…지금은 세계의 신사도를 운운하고 있는 영국놈들도 말이다. 조상들의 뼉다귀를 추려보면 해적으로부터 시작된 놈들이고. 스칸디나비아의 삼국도 봐이킹의 후예란 말이다. 그리고…』『그리고? 뭐야…시시하게 주마강식으로 서양산(西洋史)가 뭔가 한 권 읽더니… 아니 서당개 삼년에 풍월 읊는다더니! 제길랄! 그놈들이야 어떻든 네 놈의 근본이 없단말야』
『야아! 그러니까… 이렇게 징역살이를 면하지 못하고 있지만…정말로 네가 씹어뱉는 말버릇은 건설적인 토론이 아니다』
『건설적?…그래 너도 대한민국 백성이라고. 그래도 경제 무슨 사업엔가에 물이 들었구나?…응. 하지만 너같은 밥벌레는 경제계획을 좀 먹는 기생충 가운데도 못쓸놈의 악질 기생충이야!』『악질?…말 잘했다! 너나 나나 다 국가건설엔 좀먹는 기생충이야. 아니 양민들을 괴롭힌 화적들로서 마땅히 죽어야 할 놈들인데도 양곡을 썩히고 있는 밥벌레들이야. 게다가 못배운 놈들이니 도덕심까지도 강스럽게도. 아니 징그럽게도 오징어 먹통으로 찌게를 끓인 놈들이라? 임자가 있건없건 남의 물건들을 말없이 실례하고 또 경제건설을 파괴하는 불량당이요 탕아들 중의 탕아들이 아니야?…』
이렇게 말한 K는 어디까지나 은근한 말투로 화제를 돌리며 농치듯 했으나 K는 그게 아니었다. 팽팽한 고무줄의 그것처럼 놓았다 당겼다 하여 안하무인으로 K를 희롱하는 태도가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그는 그러나 두 사람의 잡음을 떨어버리듯 문뜩 머리를 흔들며 어금니에 씹히는 욕 아닌 욕을 삼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럴수가 있을까? 두 사람이 공범자는 아니지만 말이다. 나처럼 앞 뒤 없는 전차도 아닌, 일년짜리 단기수로서…. 한 방에서 잠을 자고 한 공장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그리고 내일을 위한 기술연마에 게으름 부리지 않는사람들끼리…. 아니, 인쇄기술을 열심히 배워…인류문화에 공헌을 하겠다던 그때는 언제고?…하며 그가 이렇게 심각한 생각을 거듭하는 순간 언제 두사람은 침묵삼매에 들어가 있었다. 다행한 일이었다. 그런 일이 없었던 것보다 다소 머쓱하기는 해도 수중처럼 조용해서 좋았다.
「앵무, 앵무새 앵무새….」
그는 이렇게 또 사전을 읽어갔다. 그런데 등 뒤에서 벨을 누르듯 K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쿡 찔렀다.
『배 형?』
『어엇!』그는 펄쩍 뛸듯이 깜짝 놀랐다. 아니, 펄쩍 놀라는 표정으로 꿈틀 허리를 비틀어 보였다. 그러나 S는그것과는 아랑곳 없다는듯 아니 장난끼 어린 얼굴로 미소를 깨물며 닫힌 말문을 열었다.
『미안합유. 우리가 떠들어서. 공부하시는데 방해가 되었겠슈?…』
『아아-뇨?』하고 그는또 한번 펄쩍 뛸듯이 놀라며 부정사를 토했으나 마음속으로는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좋아요. 어디까지나. 건설적인 토대 위에서라면 마음 푸욱 놓고 무슨 토론이든지 하시오. 하지만 앵무새처럼 남의 것을 흉내낼 정도라면 정말로 당신의 앞길도 말이 아니란 말야!』
<필자 무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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