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에 공소회장을 맡아본 적이 있었다. 물론 불우한 형제들이 모이는 그 공소의 특수성도 있었지만 비교적 많은 형제들이 마귀를 단절하고 신앙을 고백하여 천주님의 자녀로 소속 새로이 발생하였을 뿐만 아니라 보다 능동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신자로써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 기쁨 말할 수 없이 컸었다.
그러나 그러한 쾌재가 허튼 생각이 되고마는 이 마음 아픈 현실이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이 가로놓여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부자가 되기 위해 부풀어있다면 크게 칭찬만 받을 수 없겠지만 최소한 먹고 살아야 하겠다는데 부딪쳐 있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만큼 그것은 처참한 것이다. 그 본능적인 욕구가 해소되지 않는 한 그 밖의 어떠한 것도 그들의 생각을 지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제아무리 신심이 강한 신자라도 아사지경에서『주여! 나로 하여금 굶주려 죽도록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하나이다』하며 기꺼이 순명할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그것을 올바른 신앙심의 발로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 전에 그때 영세 배출된 여러 교우들의 신앙생활 근황을 들어 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대자이기도한 모 모이세씨는 가정으로 돌아간 후로 그처럼 열성이던 신앙생활을 거의 포기하고 있단다.
장사하느라고 장마다 쫓아다니기 삼백예순날 성당에 몇 번이나 나갔는지 기억마저 희미하다는 것이다. 몇 번 나갔을 때마다 조그마한 성의도 봉헌하지 못한 마음은 생생하게 아픈 추억이란다. 모 요한씨는 가정이 파탄에 이르러 교회에 나가볼 마음조차 회복하기 요원하다 하였으며 비교적 가까스로 영세를 받기는 하였지만 모 프란치스꼬씨는 일년 반 동안 한 번도 교회에 나가지 못하였을 뿐더러 직장을 찾아 전전긍긍 건강도 아직 불완전한 탓인지 주님을 마음속에서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고 송구스레 두 손을 마주잡는 것이다. 모 마리아 모 도로테아, 모 안나….
생활과 신앙이 유리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교리를 내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알아본 그 대다수는 한결같이 생활의 궁핍 때문에 안타깝게도 신앙을 상실당해가고 있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전국교회 마다의 주인 잃은 교적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의 주인(主因)은 무엇일까.
경향잡지에 소개되는 공소돕기 시리즈에 비치는 각계 각처의 공소들의 아우성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이러고도 우리는 새로운 영세자의 배출통계에만 전념하거나 만족해하고 있어 옳은 일이겠는가?
결코 우리는 교회라는 크나큰 거구를 지탱시켜나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지혜를 기울여 그 비대해감을 만족해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순간 그 알맹이를 놓쳐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그 알맹이를 잘 가꾸고 보호하는 일이 교회가 비대해지는 것과 직결되는 것임을 간과해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 모든 신자들이 스스로 이러한 난관에 어떠한 자세로 대처해야 옳을 것인가 하는 반성을 새롭게 해야함은 물론이지만 많은 종교인들은 이러한 사태에 대비하는 정신적 물질적인 해결책을 연구 검토하여 꾸준하게 펴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는 길은 요원하다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어 나가지 않으면 항상 미봉책에 불과하여 현상유지에 급급하게 된다는 것도 생각해둘 필요는 있다고 본다.
비록 이상의 제언이 무모한 평신도의 칠실지우에 불과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이로써 등하불명 격으로 우리 주변에 너무도 흔한 생활과 신앙의 부조리한 현실을 직시해 보는 계기가 되어 가난하고 괴로운 자들, 짐 지고 죄 많은 자들을 위하여 베풀어지기를 원하는 주의 사람이 실현됨으로써 아무쪼록 무궁한 교회의 발전과 신자들의 번영에 이바지되는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주님의 뜻 받들어 간곡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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