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부산을 자주 오르락거리는 데도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 경부(京釜) 천리길이 하루길로 그것도 1일 생활권이 형성돼가면서 왕복길이 가능케 되었으니 아주 편리해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비행기만은 숙달이 되지 않아서 가벼운 멀미 기분을 극복치 못하고 있다. 기차는 좀 시간이 걸리지만은 언제 타도 상쾌하다. 이 기차를 탈 때마다 그것도 관광호를 타게 되면 그 상쾌감 때문에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항상 드는 것이다.
국가가 국회의원에게 지급하는 무임승차권의 고마움과 송구함을 늘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선거후에 친구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감상을 물었을 때 기쁘기보다는 두려움과 큰 책임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71년 선거 때 낙선했을 때보다 가슴이 무겁다고 대답했었다.
이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고 매번 기차를 무임승차 할 때 그 회수가 많아질수록 가슴은 점차로 무거워져오는 것이다.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유권자가 바라는 이 직책의 소임을 다하는 것인가 하는데 가슴이 찌르는 듯한 감회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K군은 나의 왔다갔다하는 모양을 보고 퍽 만족감에 휩싸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을 때 이 친구야 실상을 잘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고 일렀다. 보기에 따라서는 75만원이란 납세자 입장에서 보아 분명히 거액의 세비를 지급받고 무소불통이요 존경받는 듯이 여기고 있으니 화려한 듯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 고바우나 두꺼비씨 등 세비 많이 타고 빈둥빈둥 놀면서 해외여행이나 다니는 직업으로 묘사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며칠 전 모 일간지에 실린 어떤 정년퇴직한 대학교수가 쓴 수필 중에 친지들로부터 이제는 외국여행이나 다녀오시지 하는 말을 듣고 자기를 국회의원과 비슷한 직업에 있은 사람으로 생각하는가 하고 의아했다는 구절을 읽었다. 국회의원과 외유를 마치 수학의 동일등식으로 표현하는 일은 많이 경험한다. 그 근저에는 납세자의 질책이 그리고 조소가 복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어제 오늘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9번의 선거와 헌정 23년을 관류(貫流)하면서 형성되어진 것은 분명하다 .우리의 선거는 우리가 뭐래도 최소한의 자금 없이는 치루기 어렵고 여유 없는 후보자의 경우 반드시 빚을 지기 마련인 것은 해본 사람은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다.
유권자와의 약속을 이행하고 그 소리를, 원망을 풀어주는 노력을, 그 노력이 빛이 나고 성과가 나느냐와 상관없이 애를 쓰는 많은 동료들을 볼 수 있다. 그런 이들 중에는 빚의 일부를 부득이 세비에서 거액을 가불해내어 충당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이다. 그 해외여행이란 것도, 가령 공무냐, 사적인 유람이냐를 가릴 것 없이 그렇게 많은 의원들이 들락거리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번 국회에 들어와서도 통계를 보면 전체의 4분의 1가량이 출국했었던 것이다. 변호사일로 71년 8월 초에 서귀포에 1박한 경험밖에 없는 나의 처지로서는 의원의 외유시비가 한낱 강 넘어 불구경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실감나지 않는 이야기인 것이다. 과다한 가불로 얼마 남지 않은 적은 세비를 쥐어 들지라도 할 일은 하고 비판받을 것은 채찍을 맞아야 하는 것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입법활동에 충실한 자세를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다. 국회에 놀러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직업 시하여 취직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법에 정한 임무에 투철한 공복으로서의 신념을 펴기 위하여 그렇게 하도록 보내진 이상 이것을 위한 고뇌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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