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외방전교회」총장 「샬르 르메르> 주교는 별항의 보도와 같이 1월 28일 서울레 도착함으로써 두번째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
<르메르> 총장의 이번 한국방문은 5년마다 그 관할 전교구역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 순회하는 사무적인 순시(巡視)로서 특별한 사명을 띈 것은 아니라 하지만 우리는 이 기회에 『파리외방전교회』와 우리민족과의 깊은 관계에 대하여 특히 오늘날의 성장(成長)에 이르게 한 한국가톨릭교회의 초창기의 개척자(開拓者)요 『양육자』(養育者)였던 프랑스인 선교사들의 업적을 다시한번 생각함으로써 그들의 은공(恩功)에 감사하고자 하며 아울러 「파리외방전교회」를 대표한 <르메르> 주교께 충심으로 환영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중국, 「베트남」등 아시아에 있는 20개국에 걸쳐 48객구(敎區)를 갖고 주교 26위를 포함하여 약 1천명의 회원성직자들이 복음전파에 종사하고 있는 큰세대(世帶)인 『파리외방전교회』는 『포교성성에 소속되어 있는 전교지방의 교회기관에서 일함으로써 천주의 영광을 현양하고 그 자신의 성화(聖化)』하는 것을 목적으로
그 목적을 실천하는 데 있어
(一) 그나라 사람 성직자의 양성
(二)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영신적 교육
(三) 그 나라에 있는 외교인의 귀화(歸化)
라는 세가지 강령(綱領) 아래 다시 이를 세 계단(階段)으로
① 주교와 같이 신자가 없는 어떤 나라에 가서 사제(司祭)생활을 하는 것과 ② 그 지방에 본방인(本邦人) 성직계급이 구성되면 그 본방인 주교의 지배를 받으면서 일할 것과 ③ 그 지방의 교회가 자기들의 도움이 필요없이 완전 자립(自立)할 수 있게끔 발전되었을 때에는 그 지방을 떠나 또 다른 개척지를 찾아가서 전교한다는 원칙(原則)으로 거금(距今) 302년전인 1658년에 <프랑소와 빨뤼>와 <랑베르 더 라 못터> 두 분의 몽시뇰에 의해서 창립되었다.
이러한 사도정신과 이상(理想)에 불타는 이 회의 성직자들은 그후 많은 나라에 가서 헤아릴 수 없는 고난을 참아받으며 난관을 극복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세복음을 전파했을 뿐만 아니라 그 나라 문화에도 크게 이바지 해왔던 것이니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근대(近代)문화사(文化史)에 끼친 이분들의 공적은 실로 지대(至大)한 것이었다.
우리민족과 관계를 맺게된 1831년 이후 1886년까지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혹독한 군난을 네차례나 겪어 많은 순교자를 내면서 오직 인내와 희생으로 우리 민족을 천주대전으로 이끌기에 초지일관(初志一貫)하였다., 그리스도의 정신부대(挺身部隊)에 속한 이들 선교사들은 기해(己亥)년의 교난때에 이미 세 분의 순교복자(福者)를 내었으며 병인(丙寅)년 순교자 중에서 머지않아 복자로 시복(諡福)되실 아홉분의 가경자(可敬者)가 있는 한편 또 1950년 저 6·25의 전란으로 무신론(無神論) 공산주의자의 손에 열두분의 희생자를 내었는데 『순교의 공예학교』라 불리우는 파리외방전교회 대신학교는 그 졸업자 가운데서 17위의 복자를 내었다고 한다.
1920년에 「오딜리엔」의 『성베네딕트수도회』가, 1927년 미국의 『메리놀외방전교회』가 또 1933년에 『성골롬반회』가 이 나라에 진출하기까지 『파리외방전교회』는 전 한국의 포교를 홀로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처음부터 장래의 한국교회에 대한 헌신적(獻身的) 양육자(養育者)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기들의 견인불발(堅忍不拔)의 노력으로 이룩된 소업(所業)과 재산을 후대(後代)에 전할 유산(遺産)으로서 그것이 모두 법적으로 장래 이 나라 교회에 속할 것을 생각하고 그들이 길러낸 본방인 성직자들에게 혼연히 모든 관리(管理)를 넘겨주었던 것이다. 현재 이 나라의 수도(首都)로서 그 권위와 영향력을 가장 많이 갖고있는 서울교구와 또한 서울교구 다음으로 큰 교구인 대구교구의 안정된 기반은 실로 이분들이 마련해 놓은 것이다. 자기 희생이라는 영원한 천상보화를 쌓는 것 밖에 아무런 다른 것을 원치 않는 이분들은 1942년에 서울교구와 대구교구를 본당인 성직자들에게 맡기고 1948년 충청남도를 관할구역으로 한 대전(大田)교구를 설립하고 <아드리안 라리보> (元) 주교를 수반(首班)으로 현재 22명의 회원신부들이 전교에 종사중이며 한편 대구교구내의 북부(北部)지대 8개 군의 포교를 맡아 본방인 주교의 지배아래 12명의 동회 신부들이 『추수할 것 많으나 일군이 적은』 이 나라 성직자의 손 부족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포교개시 이래 130년이란 긴 세월동안 영웅적 노력의 아름다운 보수(報酬)와 열매는 이 평균 5만명 이상의 교우가 늘어가고 있는 한국가톨릭교회, 오늘의 교세발전 뒤에 숨은 이 존경하올 『양육자』들의 은공을 이 겨레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