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어떤 해수욕장에서의 2박3일의 일정에 쫓기면서도 바닷물에 몸을 식히는 상쾌감을 오랜만에 감각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낯익게 된 11살의 재일교포 소년과 짧은 일본말로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영어에 능통함을 알고 영어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할머니, 어머니와 여동생과 같이 한국에 오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일본에서 한국계상사 주재원으로 오랫동안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미처 귀국치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좀 놀라운 것은 이 아이가 한국말은 전연 알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다. 일본인이 다니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부모와는 일본어로 대화하면서 과외로 동경의 외국어수련소에 다니면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어린놈을 어이 탓하랴. 저만치 앉아있는 그 어머니를 한참 쳐다보았다. 기분이 몸시 언짢다. 화가 치미는 심정이다. 내 성격이 가끔 극성 맞은데가 있는 것이 흠이지만 그 애 아버지가 가까이 있었다면 한번 따져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런 심사를 알아차린 아내가 그 아이를 좋은 말로 자리를 뜨게 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는 미국을 비롯한 큰 나라에 대한 지극한 매력을 갖고 유학이다 뭐다 하면서 빠져 나갈려는 풍조가 팽배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뭐 대단하게 사대주의니 하는 따위로 이를 비난할려는 취지에서가 아니라 잘못된 일이 분명하니, 그러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 그러지를 않는 사람들이 병신이 아닌 이상 바로 잡아야 한다 그말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유신정우회에 속한 분이 밝히기를 현직 외국 주재 대사 두 사람의 아들들이 외국국적을 취득한 사실이 있고, 또 한 사람의 아들이 그 수속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당국자는 이를 시인하고, 즉각 취소토록 했다는 것이다.
기가 찰 일이다. 이런 아이들이 병역의무를 이행할 생각을 가졌을리 없다.
외국에 유학간 아이들 중에서 병역 기피자가 수두룩하고 돈 있고 지위 높은 사람의 자제가 관련됐는데 몇 년전 떠들썩했던 일이 결코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 자녀를 일반 국민학교에 넣지 않고 주한외국인사용의 국민학교에 다니게 하는 일이 많이 있다는 보도다. 좌우간 남들보다 여유가 있어서 다르게 키우자는 뜻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나 이것은 분명 심한 경우라고 할밖에 가소로운 일은 얼마든지 있다. 신문에 나는 부고 중에 유족이름 옆에 도미(渡美)중이란 주석을 붙인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몰론 좋은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상주가 한국에 없다는 취지를 알리자는 그런 뜻으로 말이다. 그러나 상주가 여럿 있을 때 그 중에 한두 사람 국내에 없다는 것을 굳이 알지 않아도 될 그런 경우, 누가 그 점을 크게 주목치도 않을 그런 경우인데도 도미중이란 주석을 붙이는 뜻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무슨 훈장감이라도 된단 말인가. 외국유학을 갔다하면 모두 학업달성을 하여 박사학위를 받아오는 경우가 아주 흔해지게 되었다. 해방 직후 이승만 박사 김규식 박사 귀국시절처럼 박사학위가 항일투쟁의 상징적 간판으로 우리의 가슴에 큰 비중으로 받아들여진 시대는 이미 옛일이 되고 만 것이다. 박사공급이 확대된 이상, 이제는 부문별로 국가적 목적에 꼭 필요한데만 외국에 유학케 해서 전문지식을 연찬해오도록 하는 것이 외화를 아끼고 유학 과잉현상에서 초래되는 온갖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바로 이러한 요구가 이즈음에 절실해진 것이다. 자립경제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눈물겨운 수출전쟁을 하고 있는 우리가 그 아깝게 벌어들인 외화를 낭비하거나 터무니없이 외국으로 빠져 나갈려는 듯한 일부 경향을 경계해야 하고 자숙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민족주체성이란 도시 무엇인가. 사소한 일에서부터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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