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란 하나의 인간을 만들고 그 인간이 지닌 목적을 달성케하는 노력이라고 본다. 따라서 학교교육이란 교육의 일부분을 말하는 것에 불과한 동시에 가정(家庭)과 국가(國家)와 교회(敎會)는 각기 교육에 있어서의 자기 사명을 분담(分擔)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교육에 있어서 세 가지의 권리(權利)와 의무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종교적 및 도덕적 진리를 가르치는데 관한 것이오. 둘째는 세속적인 모든 과학(科學)과 교육을 종교적 견지(見地)에서 판정(判定)하는 것이오. 세째는 세속적 교육이 인간을 종교적 진리로부터 멀리하게 하지는 않는지 항상 경계(警戒)하는 것이다.
가정과 국가와 교회가 서로 협력하여 각기 자기 사명을 완수할 때 비로소 하나의 인간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말한 교회의 교육사명인 종교적 도덕적 진리를 가르치는데 가정과 국가는 마땅히 협력하여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이 사명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여러가지 방법을 가지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가톨릭학교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는 부하된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초등, 중 고등 및 대학교를 세울 권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까논법 1375條) 초등 및 중·고등학교에 관하여는 만약 그 지역(地域)에 교회학교가 없는 경우에는 특히 그 지역을 맡은 주교에게 학교를 세우기 위하여 노력할 의무를 지워두고 있는 것이다. (까논法 1379條 1項) 또 『까논법(敎會法)』1374조를 보면 가톨릭신자 자녀(子女)는 가톨릭학교 아닌 다른 어떠한 학교에도 보내지(通學_ 말아야 하며 특수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그 지역을 맡은 주교만이 교황청의 지시(指示)에 따라 가톨릭학교 아닌 다른 학교에 다니는 것을 묵인(默認)하기로 결정할 권한(權限)을 지니고 있다.
『가톨릭학교』라 함은 어떤 가톨릭신자나 가톨릭재단(財團)이 경영하는 학교라는 말과는 같지 아니하다. <메르시에르> 추기경은 1909년 11월 8일 그의 회장(回章)에서 『우리는 국·공립(國·公立)학교라 할지라도 만약 그 교장이 가톨릭이고 가톨릭적 교육을 실시한다면 가톨릭학교라고 보아야 한다……』고 하셨다. 물론 가톨릭학교라고 불리우려면 종교교육을 시키는 것만으로 족하지 못하며 강의(講義), 학교명령, 인사(人事), 교과정(敎科程), 교재(敎材) 및 모든 규칙이 진실한 가톨릭정신에 의하여 지배되어야 하고 또한 자모이신 교회의 지도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오 11세 回勅)
현재 우리나라에는 50개소의 교회가 경영하는 이른바 가톨릭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이 있다. 그중에서 신학교를 제외하고는 위에서 말한 가톨릭학교의 면모를 갖춘 학교가 과연 몇이나 있을런지 원래 가톨릭학교는 그 지방신자 자제들의 가톨릭교육을 위한 기관이다. 따라서 모든 교사(敎師)와 교장은 가톨릭교육을 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독실한 신자이어야 할 것임은 말할나위도 없다. 모든 교재(敎材)와 교과정(敎課程)의 선정(選定) 및 교육방법이 가톨릭적이라야 하며 국가의 명령 외에 교회의 명령을 또한 다라야한다. 교회는 교육에 있어서 국가가 보충할 수 없는 자기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우리나라 가톨릭 산하(傘下) 학교 교육의 현실을 살펴보면 위에서 말한 교회의 요구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3백년이 못되는 짧은 교회역사를 가진 전교지방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사실과 아직도 불과 총인구(總人口)의 2%를 넘지 못하는 극소수(極少數)의 가톨릭신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우리나라와 같이 개종(改宗)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전교지방의 교회가 가진 교육사명은 더욱 클 것이며 또한 그러한 가톨릭 산하 학교운영에 있어서의 과도적(過渡的)인 방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교회가 명하는대로의 가톨릭학교 교육을 실천(實踐)하기 위한 한 과정(過程)에 놓인 우리나라 가톨릭산하 학교는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에 당면하고 있다. 그러나 그 종교적 교육 사명은 교회역사가 긴 다른 지방에서보다 유달리 크다는 것을 재삼(再三) 느껴야 할 것이다. 오늘쯤은 적어도 가톨릭산하 학교 학생의 과반수(跨半數)가 가톨릭이 되어 있어야 하겠고 교사의 절대다수(絶對多數)가 독실한 가톨릭신자로서 짜여있어야 하겠고 가톨릭 교육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교육열이 높은 교장이 가톨릭 학교라는 피안(彼岸)을 행사는 배의 사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목표(目標)는 우리교회 전체의 협력 없이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모든 신자들은 자녀를 교회산하 학교에 보내어 우선 그 학교의 대세(大勢)를 가톨릭화(化) 하여야 하고 학교설립자는 인적(人的) 물적(物的)으로 가톨릭화 할 수 있는 제반(諸般) 학교환경(環境)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의 앞날이 이 어린이들에게 달려있다면 이 어린이들의 움직임 속에서 보는 내일의 교회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세속의 학식이 늘면 그만큼 종교적 지식과 신앙의 도(度)가 높아져야 한다. 자연계의 발육(發育)과 초자연계(超自然界)의 발육이 동시에 같이 균형(均衡)있게 영위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인간이 완성되는 동시에 하나의 신앙인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절룸바리의 교육은 지식의 파산(破産)을 초래하고 불행한 인간을 만들어내고 말 것이니 학교 선택(選擇)에 있어서 자녀를 가진 신자 여러분의 각성(覺醒)을 촉구하는 동시에 학교설립자측(設立者側)은 교회산하 학교를 하루빨리 가톨릭학교로 만들기 위한 비상한 관심과 노력을 보여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