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부터 해마다 3월 19일에는 서울에 있는 대신학교(가톨릭대학)에서 여러분의 새신부가 배출되어 각기 그들의 소속교구에 돌아가 성직에 봉사하고 있는데 금년에도 14명의 새로운 사제(司祭)들이 탄생될 것이다.
세계를 없는 가운데서 창조하신 천주께서는 이상하게도 당신의 구속사업에 있어서는 인간의 협력을 요구하고 계셔 사제직(司祭職)은 그때문에 제정된 것이며 성 <바오로> 종도께서 『천주의 신비의 관리자』(코린토전서 4,2)라고 말씀한 사람들이 바로 사제들인 것이다.
사제직은 확실히 고귀한 사명(使命)이다. 그 사명의 중대함과 그 결의 험난함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 14명의 새 신부들위에 천주의 풍후하신 축복과 성모 마리아의 보호하심을 빌지 않을 수 없다.
교황 <요안>23세께서는 『신구약(新舊約)의 위대한 교의(敎義)를 전하며 이를 영혼들과 생활에 침투시키는 일 이것이 가톨릭사제의 첫째 의무가 아니겠는가』고 하시고 『나는 주교나 사제들을 찾을려 하면 언제나 제대(祭台)에서 구세주의 몸과 성혈(聖血)을 분배하고 있는 곳에서 이들을 찾도록 권유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들이 받들고 있는 종교의 산 실체(實體)이기 때문이다. 이 제단(祭壇) 이 거룩한 산(山)에서 땅위의 사물을 내리다보며 그를 판단하고 그것을 사용할 것이다. 여기서야말로 인류공동체(共同體)를 찢어버리기도할 중대한 여러문제의 바른해결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고 말씀하셨는데 오늘날의 사회가 가톨릭사제에게 기대하는 것은 성서(聖書)의 광명과 함께 구세주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에 의한 구원(救援)이다. 현대사회는 대단히 복잡한 병폐(病弊)에 고민하고 있어 그의 구제책도 각양각색으로 실시되고 있지만 참된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속제(贖祭)의 은총에 바탕을 둔 것 뿐임으로 그 속죄의 은총의 분배자인 사제에게 인류가 희망을 걸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기술(技術) 문명의 진전과 함께 현대의 사회생활은 점점 복잡하게 되어가고 있으며 정진적인 결함이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어 도처에서 참된 구원을 부르짖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그 결과로 가톨릭 사제의 헌신(獻身)과 탁신(託身)이 어느시대보다도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그리하여 성서와 「카리스」에 의한 사제직은 다만 교회안에서 설교를 하고 미사를 드리고 성사를 주는 일에만 국한할 수가 없게되었음으로 유능한 사제가 더욱 많이 배출되어야 할 것이 요청되는 것이며 현대인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광명과 구원을 받아드리기에 어려운 곤난이 많으면 많을수록 포교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많은 사제와 선교사의 힘을 기우려야 할 것이며 구해주어야 할 병폐가 고질(痼疾)이면 고질일수록 방법을 바꾸고 손을 바꾸어서 치료를 해주어야 할 것임으로 더욱 많은 일꾼을 보내주시도록』 신자된 자들은 기구함과 아울러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사제양성(養成)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사제직은 성직이라는 이름이 말함과 같이 신성한 사명이며 천주께로부터 받는 특별한 선물이다. 천주의 성소(聖召) 없이 사람이 스스로 바란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동시에 천주의 부르심에 응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없다면 성소가 또한 헛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14명의 새 신부들이 제대앞에 그들을 봉헌(奉獻)하는 것은 결코 그들 자신만의 봉헌이 아니며 그것은 그들의 부모 그들의 가족의 봉헌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니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만약 천주께서 나의 아들을 사제직에 부르신다면 나는 즐거히 봉헌할 수 있을가』하는 자문(自問)을 해볼 것이다. 자녀에게 기대하는 자연적이고 세속적인 희망에서 볼 때 확실히 하나의 희생이기도 하다. 그러나 즐거히 바칠뿐만 아니라 <비오> 12세 교황께서 권고하셨음 같이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이 천주께의 봉사(奉仕) 대열에 들도록 열심히 기구』해야 하는 것이다.
사제직에 대한 깊은 존경 그것은 무엇보다도 가톨릭적인 가정생활에 의해서 길러지는 것이며 부형들은 그 자제에 대한 천주의 부르심에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은』 이나라 교회를 위하여 또한 우리나라 사회가 가톨릭 사제들에게 바라는 기대는 사제들만으로써 달성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제양성에 협력함과 아울러 사제의 임무 수행에 협력하는 신자의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이 기회에 강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