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信仰人)은 두 나라 안에서 살고있다. 하나는 신(天主)의 명령을 따르며 그를 흠숭(欽崇)하고 그 영광(榮光)을 노래하는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원수(元首)의 명령을 지키며 국리민복(國利民福)과 자기의 현세적(現世的) 행복을 구(求)하는 교회와 자연복리를 지향하는 구가는 각기 제 영역(領域)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동시에 이 두 나라의 백성(百姓)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도덕인(道德人)의 위치에서 양심(良心)의 명령을 따르고 국민의 위치에서 국가의 명령을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 두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반드시 그러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고는 인간의 구실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두 나라의 명령이 상반(相反)될 때에는 현세(現世)에 불행이 오는 것이고 서로 부합(符合) 또는 적어도 상반되지 아니할 때에는 현세의 행복이 초자연사회로 연장(延長)외고 영원성(永遠性)과 절대성(絶對性)을 띠게 되는 것이다.
착한 신앙인이기 때문에 착한 국민이 된다는 말은 착한 도덕인이기 때문에 착한 국민이 된다는 논리(論理)보다 훨씬 지당(至當)한 말이다.
초자연사회와 신(天主)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교회가 무엇인지 이해될리(理)가 없다. 그들은 교회당(敎會堂)을 보고 그 건축(建築)과 조각(彫刻)과 전례(典禮)에 감탄(感歎)할 줄은 알면서도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교회를 알고 신의 세계를 볼 줄은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흔히 교회의 목적을 때묻은 속세(俗世) 안에서 제멋대로 찾아내려고 한다. 그들은 교회가 속세 안에 있어 속인(俗人)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그 목적이 영원한 신의 나라로 인도(引導)하는데 있다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모르고 있거나 또는 알면서도 믿지 아니하고 있다. 교회의 사명(使命)이 어디 있는가를 모르거나 믿지 아니하는 그들은 국가가 신의 명령 밑에서 국민의 자연복리(自然福利)를 증진(增進) 시켜야 한다는 중대한 의무(義務)를 망각(妄却)하고 있다.
요새 사람은 세계를 자유진영(自由陣營)과 공산진영(共産陣營)으로 나누어서 본다. 신의 명령을 따르고 교회를 이해하는 나라들을 묶어서 자유진영이라고 부르고 신과 교회를 부인(否認)하고 양심의 선천성(先天性)을 부정하는 나라들을 공산진영이라고 부르고 있다.
공산진영의 정치인(政治人)들은 교회와 정치단체(政治團體)를 동일시(同一視)하고 있다. 그들은 신과 양심과 정신생활과 인간의 존엄성을 부인한다. 그러기 때문에 공산국가의 정치인들은 교회를 가면(假面)을 쓴 정치단체로 본다. 로마 교황을 당수(黨首)로 하여 포교(布敎)라는 간판(看板)을 메고 세계 방방곡곡을 찾아 다니며 『믿어라! 순명(順命)하라! 고생을 참아라!』고 백성들을 꾀어 세계를 정복(征服)하고 로마대제국(大帝國)을 세우려는 음모(陰謀)를 가진 정당(政黨)이라고 모함(謀陷)하고 있다. 그들은 무자비한 독재욕(獨裁慾)이 백성의 양심을 강제(强制)하고 모든 정신생활을 농단(壟斷)하고 신으로부터 받은 인권(人權)의 존엄성을 유린(蹂躪)함을 선죄(宣罪)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은 교회를 바르게 인식하여야 한다. 적어도 소위(所謂) 자유진영의 정치인은 신이 있다는 것을 믿고 교회의 목적이 현세에 있지 아니하다는 것과 정치단체도 문화단체도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여야 한다. 국가는 신의 명령을 거역(拒逆)할 수 없으며 교회는 인류의 영혼을 구(求)하는 지대(至大)한 본래사명(本來使命)뿐만이 아니라 돈독(敦篤)한 신앙을 통하여 착한 국민을 기루어 준다는 것을 모르고 교회를 정당시(政黨視) 하거나 반국가적단체(反國家的團體)로 생각하는 몰지각(沒知覺)한 사람은 적어도 자유진영의 정치인이 될 자격을 갖지 못한 사람이다. 가톨릭교회는 정치단체가 아닐뿐 아니라 어느 정당에도 이용될 수 없는 숭고(崇高)하고 지대(至大)한 자기사명(自己使命)과 초자연의 신비(神秘)를 가진 단체리며 국가도 그 국민의 도덕생활과 영신생활에 있어서 이 교회의 협력(協力)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재삼(再三) 강조(强調)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