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天主)이 사람을 만들었고 사람이 국가를 만들었다. 따라서 사람이 국가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국가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친족(親族) 단체가 모여 씨족(氏族) 사회를 이루었고 씨족단체가 모여 부족(部族) 사회를 만들었고 여러부족이 뭉쳐 부족연맹(部族聯盟)을 이루었고 이 부족연맹이 정치조직(政治組織)을 갖추어 국가로 발전한 것이다. 이렇게 발전된 동인(動因)은 첫째로 인간의 사회성(社會性)에 있었고 둘째로 공동선(共同善)과 정치적 이익(政治的 利益)을 추구(追求)하는데 있었다. 국가는 모든 백성(百姓)이 보자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기위한 수단(手段)으로서 생각해낸 기관(機關)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국민의 공동선과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效果的)인 수단에 불과하며 국가 자체는 아무런 독자적(獨自的)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인격(國家人格)이라는 것은 국제사회(國際社會)의 질서(秩序)를 세우기 위한 편의(便宜)에서 생각해낸 의제(擬制)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생각해낸 의제인 국가가 신(天主)이 만든 인간의 주인이 될 수 없다. <헤겔>의 국가지상(國家至上)이나 <자치스>의 민족지상(民族至上)이 군국(軍國) 일본의 천황지상(天皇至上)의 사상(思想)을 단죄(斷罪)한 것이 당연(當然)할뿐 아니라 모든 계급주의사상(階級主義思想)과 전체(全體)주의사상도 마땅히 단죄되어야 하였던 것이다. 빈부(貧富) 강약(强弱)을 막론하고 태아(胎兒)에서 성인(成人)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은 신(天主)으로부터 존엄(尊嚴)한 인격(人格)을 받았으며 이 모든 인격은 신(天主) 앞에 평등(平等)하며 개별적책임(個別的責任)을 져야하는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행복 즉 자연복리(自然福利)를 증진(增進)시키기 위하여 마련한 기관(機關)이다. 그러기 때문에 국가는 적어도 정의(正義)를 위한 질서(秩序)를 보장(保障)하는 사명(使命)을 띠고 있다. 모든 인간은 착한 욕구(欲求)가 채워질 때에 행복감을 느낀다. 국민이 국가에 대한 욕구는 자유와 평등과 안전(安全)의 보장 및 정의와 진리의 실현(實現)이다. 국민 상호간(相互間)의 질서는 교환적정의(交換的正義) 위에 서야하고 국민이 국가에 대한 질서는 분배적정의(分排的正義) 위에 서야하며 국가가 국민에 대한 질서는 사회정의(社會正義) 위에 서야한다. 국가는 국민의 보다 나은 복리를 위한 정의와 진리를 실천하기 위하여서만 국민의 자유를 제한(制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국가는 신(天主)이 세운 교회(敎會)를 침해(侵害)할 수 없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친히 세운 가톨릭교회만을 지칭(指稱)하는 것이다. 인간의 초자연적(超自然的)인 영원복리(永遠福利)를 맡은 이 교회는 현세적인 자연복리를 맡은 국가보다 높은 자리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백성의 구령(救靈) 문제가 국가의 침해를 받는 경우에 있어서 예외적(例外的)이나마 정치에 간섭(干涉)하는 권한(權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간섭은 교회적인 방법에 의한 간접적인 간섭을 말한다. 그러나 국가는 교회가 맡아보는 초자연사회를 간섭할 권한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도와 모든 국민이 인간의 궁극목적(窮極目的)인 사후(死後)의 영락(永樂)을 누릴 수 있도록 조력(助力)하여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에 대한 국가의 태도(態度)는 다음 네가지로 요약(要約)할 수 있다.
첫째 -- 모든 국가는 적어도 교회에 반항(反抗)하는 정치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마땅히 교회를 도우며 서로 협조(協助)하여야 한다.
둘째 -- 모든 국법은(國法)은 신법(神法)인 자연법(自然法)에 거역(拒逆)하지 아니하는 한도내(限度內)에서 제정되어야 한다.
셋째 -- 신자(信者)인 국민에 대하여 국가 명령과 교회 명령이 서로 상충(相衝)된 경우에 있어서는 교회 명령이 국가 명령에 우선(優先)한다.
넷째 -- 국가는 교회의 초자연복리를 침해하지 아니하는 한(限) 정치에 있어서 교회의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