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전해온 보도에 의하면 성신대학에서는 금번 성당, 도서관, 교수연구실, 기타 대학의 중추건물 연1천3백여평의 신축을 보아 작 15일 주일에 그 축성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성신대학의 중심은 성당일 것이며 최고학부로서 학문의 중추기관인 도서관과 교수연구실이 명실공히 그 위용을 갖추어 천주님게 헌당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한국교회사에 찬란한 한 페이지를 새로이 장식함은 물론 우리나라 학계를 위하여 경하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성신대학의 설치목적이 성직자양성에 있음은 재언할 필요도 없거니와 한걸음 나아가서 각양각색으로 그릇된 사조의 지배로 움직여 그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학계를 바로잡는 지침이 되며 「상지의 좌」 가 되어주기를 이 기회에 다시 한번 당부하는 바이다.
한편 지방 소식들 가운데도 신학생 양성의 노력이 역연한 희보들이 보인다. 즉 광주 소재 「살레지오회」에서는 연전부터 「살레지오」중고등학교에 소신학생 양성기관을 병설해 오던 중 금번 새로이 대신학교 설치의 모든 조치가 다 갖추어졌다고 하는가 하면 같은 호남 북녘 전주에서는 소신학교 설립의 제일단계로 지난 4월에 해성(海星)중학교를 개교하고 우선 학생 70명으로 수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전주의 경우, 외신보도를 보면 기 4월말에 귀천하신 <김 발도로메오> 주교께서는 한국교회의 실정은 고아원을 해야하겠고 학교도 해야하겠고 가톨릭출판물 조급도 해야하겠으나 이처럼 허다하고 시급하며 긴요한 일들 가운데도 가장 시급하고 긴요한 일은 많은 신부를 양성해야 할 일이라고 호소하여 많은 공명의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실로 한국교회의 현항을 단적으로 표시할 호소라 하겠다.
이처럼 신학교에 대한 관심이 점고하고 있음을 계끼로 본란은 신학생 양성기관의 증설에 대한 몇가지의 재언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즉 조속한 시일내에 각 교구마다 소신학교를 설치하여 「성소」발견의 문을 더욱 넓게 열어놓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장래 어떤 시기에는 교구마다 신학교를 두어 성직자 양성에 주력할 것이며 중앙의 성신대학은 대학원을 병설하여 신학의 최고학부로서 신학연구 기관으로 모든 지방신학교 위에 하나의 「학」으로서의 연구기관이 있어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 대학원은 모든 신학교를 마친이나 또는 실무에 종사하던 성직자의 연구기관이 될 것이며 우리나라 주교회의 하나의 자랑이 될 것이다. 소신학교의 설치를 반대하는 다시말하면 그 불필요를 말하는 소리가 없지않다. 그것은 고등학교나 일반대학 수료자들 가운데도 많은 지원자가 있어 다 수용할 수 없는 현상 아래 구태여 소신학교를 두기보다 대신학교를 확장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현재로서는 일리가 없지않은 의견이다. 이러한 의견 아래 취해진 시책의 일단이 서울의 소신학교에 중등과를 폐지하고 고등과만 남기고 다시 금번 대신학교의 확장이란 것으로 발전한 것 같이도 생각되나 지방의 실정은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그리고 고등, 혹은 대학 출신자들 가운데에 많은 지원자가 있다는 사실은 서울이라는 지역적인 현상 내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지 않느냐는 고려도 일응 계산에 넣어야 할 것이다.
한편 우리의 지상과제가 더욱 더 많은 신부님을 뫼셔야만 우리 민족을 진실로 「구할 수 있다」는 것일진데 신학생 양성기관이 많으므로해서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 아닌가. 지방에 소신학교를 설치하는데에는 경제적인 이유 기타 가지가지의 장범 외 근본적인 것은 성소의 발견에 대한 더 많은 기회와 그 배양 육성에 길을 만들자는 것이다.
신학교 입학의 절대조건이 성소(聖召)라는 것은 재론을 요치 않거니와 교황청 국무장관(1912년 7월 2일)에 의하면 성신의 내적 부르심이 신품성사 수령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이 내적인 성소의 체험을 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써는 신품성사를 받을수도 없고 교회가 강요할 권리도 없을진데 필요한 것은 객관적인 성소가 크게 중요시되는 것이다. 신품성사 수령의 전제는 어디까지나 자연적, 초자연적 은혜를 받게하는 천주님의 섭리인 객관적 성소를 밝혀야 한다면 연학의 능력, 신부로서의 활동에 필요한 체력, 사제생활에 필요한 도덕적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성격 등을 필요한 시일을 두고 「테스트」해야 할 것이다. 다시말하면 적성금사의 시간이 소신학교, 최소한 고등학교의 집단생활을 경험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사료된다.
소신학교의 과정은 이러한 성소문제에 신중을 기하는 일 이외에 극난한 교회 용어의 습득 등 많은 점을 논의할 수 있겠으나 또한 앞으로 각 교구마다 신설할 수 있는 소신학교를 기설 가톨릭 중고등학교에 병설한다면 재학생들에게 더욱 많은 성소의 각성을 줄 기회도 될 것이며 또한 소신학생은 그 생활을 통하여 가톨릭 학교의 가톨릭적 「핵(核)」의 역할을 하므로 교육적인 소기의 목적달성에 더욱 큰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것도 이 기회에 생각할 문제다.
한편 사제지원의 촉진을 위하여 교우들의 특별한 운동이 강력하게 일어나야 하겠다. 가령 「로마」의 「사제성소신자회」, 「독일」의 「사제성소촉진부인회」, 「오지리」의 「사제양성 까니씨우스회」 같은 역사적으로 또한 국제적으로 그 활동이 알려진 교우들의 운동이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히 태동되어 신학교 설치의 촉진의 원동력이 되고 사제 양성에 물심양면의 뒷받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학교는 주교만의 일이 아니요 우리의 일인 것이다. 우리에게 신부가 필요하다. 우리의 신부를 누가 양성해 줄 것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