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필로메나>의 실존(實存) 여부를 신중히 조사해오던 성청예부성성은 그를 성인의 반열(班列)에서 제외하고 첨례표에서도 삭제하게 되어 ▲미국서는 새로 축성할 성<필로메나> 성당으로 차를 몰고 가던 「본스톤」의 <쿠싱> 추기경께서 도중에 이를 중지했고 많은 <필로메나> 성상이 내려지는가 하면 45년간 그를 주보로 모시던 그곳 어느 수녀는 「오! 이름 모르는 성녀여」하고 이 소식에 그만 종일 울었다고 한다. ▲성녀 <필로메나>는 1802년 5월 24일 「로오마」의 「노오바」 「까_콤브」에서 약 13세부터 15세로 추측되는 두골이 부서진 소녀의 유해를 발견하고 치명자로 단정했었다. 1805년 <비오>7세는 이를 「나포리」 근방 「무냐노」 성당에 모시게 했는데 이때부터 많은 영적이 끊어지지 않았다. 1837년 <그레고리> 16세는 공적인 공경을 허락하고 첨례날(8월11일)을 정했다. 치명자로 본만큼 그 시성(諡聖)은 필요치 안했다. ▲우리가 성녀 <필로메나>에 대해서 알 수 없는 일은 그의 이름이다. 또 그의 순교한 사실인 것이다. 현재 할 수 있는 고고학(考古學) 사학(史學)의 조사방법으로서는 그의 이름을 찾지 못했다. 여기 신학자의 논평은 ▲영적은 초자연적 능력이며 천주께서 그 구하는 자에게 은총을 베푸는 것이니 이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로 성인의 전구하심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나 그 유해는 천주께 우리 기구가 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그 때문에 혹 성인의 이름이 틀렸거나 유해의 증거가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천주께서는 결코 이 때문에 기구를 부족하게 받으실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한 저명한 신학자 <프라시스.코넬> 신부는 사실 초대의 치명자와 성인들은 그 행적을 조사하기에 지극히 힘드는 일로서 성녀 <필로메나> 역시 그 한 분으로 생각된다 하였다. ▲여기서 오해가 없어야 하겠다. 또 공연한 의심을 만들 필요도 없다. 다만 교회는 이런 일에 얼마나 신중을 기하고 있으며 이 방면의 조사를 할 때 얼마나 정확하고 권위있는 완전한 조사를 하고 있는지 오히려 더 큰 신뢰심을 가지게 해 줄 뿐이다. ▲새로 다짐하거니와 성녀 <필로메나>는 우리가 역사적 지식으로 알 수 있는 분이 못됨으로 성인명부에서 제외했을 뿐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