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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23면=옛공과의 「만유 우헤」와 같은 이 「우에」를 새 공과에는 모조리 「위에」로 고쳤다. 기엇은 그 자체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우리 교회의 독특한 용어인 「위(位) Presona」가 가득한 우리 공과에 한해서는 역시 「우, 우에」로 그대로 둠이 옳다고 본다. 왜냐하면 당장 새공과 대로 「권세있는 이를 위(位)에서 내치시고」(436면 옛공과에는 「위에 내치시고」이지만)란 원문을 보지 않고는 위(上)인지 위(位)인지 또는 위(席=Desede)인지 분간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⑨ 36면=새로 붙인 경문으로서 「성모덕서도문」에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모후」라 하였는데 이것은 반드시 「입으신 모후」라 하여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어조(語調)상 「올림을 받으신」이 훨씬 더 부드럽고, 둘째 「피승천(被昇天)이니 「몽소승천(蒙召昇天)」이니가 모두 「입을 被」 짜인 까닭이요, 셋째 옛공과에 「성모승천하는 은혜 입으심을 찬미할지어다, 마리아…… 하늘에 올림을 입으사」(59면 영복 4난) 「마리아 하늘에 올림을 입으사」(481면 몽소승천 찬미경)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것만 가지고 보더라도 옛공과를 지으신 우리 조상들의 한국말에 대한 그 조예가 깊었음을 능히 알 수 있다.
⑩ 50면=옛공과 「내괴경하는 규구」에 「입으로 외우며 마음에 제목을 묵상할지니라」가 분명히 쓰여있거늘 새 공과에는 이것이 선언 없는데 이것은 「매괴은사」를 얻어입고 못 얻어 입는데 중대한 환계이므로 큰 실수가 아닐 수 없다. 대저 매괴 15단을 염함에 있어서 「입으로」경을 염함은 묵주신공의 한갖 「육신」뿐이요 그 묘리(Mlystenia) 이를 현의(玄義)라 번역함은 너무 지나침)를 「마음 안에 묵상함이」 정작 묵주신공의 「영혼」인 것이기 때문에 「입으로만」 비록 백번 천번 묵주신공을 바칠지라도 그 「영혼」 즉 마음안에 묵상함이 없음녀 그 매괴신공에 매인 「은사」는 얻더 입지 못하는 법이다. 옛공과에 상당한 이유와 뜻이 있어서 넣은 문구를 조심없이 떼어버린 것이 아니라고 본다.
⑪ 51면= 옛공과의 「예수를 달애여 엘리사벳의 집을…… 즐겁게 하시고」라 한 이 「달애어」는 모두 이들만 나오는데 새공과에서는 모조리 「내리어」로 고쳤다. 이것은 분명히 이 「달애여」의 뜻을 알지 못한 탓으로 본다. 사실 이 「달애여」는 저 「다리사 다리가시기를」(509면과 345면)과는 전연 딴듯을 가진 말로서 현대 말로 좀 가까운 것은 「달래다 달래여」이나 이것도 완전치 못하고 제일 적당한 말로는 「유도(誘導)하다」일 것이나 이것은 문자이기 때문에 차라리 「이끌다」가 어떻까 한다. 여하튼 이 「달애여」의 뜻을 자세히 모르면 그대로 「달애여」로 두는 것이 가할 것이다.
⑫ 73면=옛공과의 「이 미사성제를 다섯가지 묘한 뜻으로 천주께 드리나니」를 새공과는 짐짓 「다섯 가지 오묘한 뜻으로 드리오니」라 하셨다. 우리가 보통 알기에는 「묘한 것은」(Admirable) 「오묘한 것은 Mlysterious (玄義神秘不可思議로 알아듣는다. 그렇다면 천주의 공의를 상해옴을 보속하는 것이 玄義 혹은 (不可思議)가 아닐 것이요 「천주께 받은 은혜를 감사함이」나 「예수의 고난 받아 죽으신 것을 기억하는 것」이 玄義 不可思議가 아닌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 「다섯가지」 중 어느 한가지도 「오묘한 뜻」 즉 玄義 不可思議의 뜻이 아니라 본다. 미사 성제 그 자체는 현의(玄義) 또 신비로운 것이지만 그 「신비도룬 제사」로써 「목적하는바 다섯가지」는 결코 신비롭거나 불가사의한 것은 아니라 본다. 그러니까 새공과에 「오묘한 뜻」으로 고친 것은 교리상 위반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계속>
朱在用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