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출판기념회(C신부의 詩集)에 나온 저명한 문인 한 분은 “천주교 안에도 문학이 있었읍니다”라고 무슨 시니칼한 뜻이 아니라 사실 놀랐다는 듯이 말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벌써 오래된 얘기이다.
△ 이런 소리를 들을 때 그런 무식한 말이 어디 있느냐 하든지 혹은 역사를 아느냐, 세계를 아느냐, 하고 면박을 주기는 쉽다. 그러나 그런소리(천주교 안에 음악이 있느냐 천주교 안에 미술이 있느냐 하는 것이라도 무방하다)를 듣게된 자신을 한번 곰곰히 뉘우쳐 봄직한 일이 아닐까?
△ 첫째 천주교 안에… 한 것이 어쩐지 우리 한국만을 가르치는듯 앞을 질린감이다. 우릴서 자랑스런게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5월의 성월을 참 계절의 정열이 당치못할 만큼 치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성당안에서의 조심성 있고 경건한 몸가짐(이즈음 특히 젊은특엔 그렇지도 않지만) 같은 것은 이방인들이 첫인상으로 극구 찬양을 아끼지 않는 것들이다. 그런 소릴 들을수록 전자와는 혹심한 콘크라스트가 생기는 것 같고.
△ 또 한가지 여기 관련된 화제로 어느 독일신부님은 본당소식을 묻는 기자에게 “우리 교우는 무식할 수 없읍니다. ”고 했다. 그래서 그 본당서는 매일밤 교리공부를 하고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계명을 겸한 인상이었다.
△ 이제 우리는 자기와 제 둘레를 마치 오래 닦지 않은 유리창을 말씀히 해두고 이쪽저쪽을 환히 드러다 보듯 솔직히 평가하며 시인해야 할 줄 안다.
“천주교 안에도 문학이 있었읍니다.” 이 말은 자기편달의 교훈으로 삼을만 하다. 마치 매로 얻어맞는듯 사모치게 들을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또 교우는 무식할 수 없다고 한 말은 우리 한국교우들이 이럴 수(무식) 있느냐는 말로 받아들여야 하고.
△ 여기서 말한 「문학」「음악」 「미술」 「무식」 한것은 어디까지나 가톨리씨즘에선 그것을 말한 것이다. 우리 영혼에 영세를 받음과 같이 예술 학문에도 족히 세를 받아야 한다는 뜻에서다. 그때문에 우리는 자기의 사회적 위치(세속적인 혹은 파가니즘외)를 보잘것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겸손으로 자모이신 교회의 품안에 안겨 엄마 무릎을 타고 앉아 말부터 배우는 유아로 몰아서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