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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21면=옛공과의 “갖가지 망착(忘着)함과 위험에…”의 이 “망착“을 짐짓 “망측(罔測)”으로 고쳤다. 이것은 필경 “망착”과 “망측”의 뜻을 분간치 못한 탓이리라. “망측” 혹은 망척(罔飭)은 다 아는 말이어니와 “망착”은 우리나라에 오셔서 22년간 “전문적으로” 우리 말을 “전공적”으로 연구하시어 11만여 “어휘”를 모아 “한불자전(韓佛字典)” 그리고 “조선어 문전(文典)” 등을 편찬하신 (이 모두가 병인년 군난에 없어졌음) 순교자 안 주교의 저작 “한불자전” 에 “Legerete; etourderie. Deraisonrable” 즉 경거망동(輕擧妄動=輕躁·粗忽輕率·沒道理·沒條理 등등)의 뜻을 가진 것이다. 이러한 구별을 알지못하기에 “망측”으로 고쳐 글의 뜻을 참으로 “망측”하게 만들어 놓았다.
26. 237면= “도리어 겸손하고 신빈(神貧)하고…… 순명하는 길로 달아 천당……에 이르게 하소서”를 새공과에는 “겸손하고 신비(神秘)롭고…… 길로 따라……”로 고쳤는데 “달아”를 “따라”로 고친 것도 큰 잘못이지만 “신빈”을 “신비롭고”로 고친 것은 더 큰 잘못이다. 신빈(Paupertas spiritualis)를 신비롭고(Mysteriosum)으로 고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여기 한번 뿐이면 혹 “인쇄오식”이라고도 하겠지만 “신민”이 공과에 두번 나올 뿐인데 두번 다 (323면) “신비롬”으로 하여 “저” 성신도문“에 우리에게 신빈한 덕을 주시기를 구하나니”에도 역시 “신비로운 덕을……” 하였음에 비추어 이는 짐짓 고의로 고친 것이 확실하다.
이것은 40만 신자 대중이 경건한 마음으로 받드는 이 “공과”에 이러한 “교리적오류”를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27. 288면=부터 293면까지의 “성모통고사” (우리 문장필치의 가위 “걸작” 중에 하나)에 새공과는 “진짓”을 전부 “짐짓”으로 “설워”를 “서러워”로 “설움”을 “서러움”으로 “이렇듯한 고로움”을 “이렇듯 큰 괴로움”으로 등등 24군데나 고쳤다. 이 아까운 “걸작”을 망쳐놓은데 대해선 할 말이 없다. “진짓”과 “짐짓”에 대한 차이는 위에 설명한 바이요 “덥게”를 ”뜨겁게”로 고친 것은 그 라틴 원문을 보아 알 수 있다. “내 마음을…… 덥게하소서 (Facut ardeat cor meum)”로 되어있다.
28. 300면= 옛공과의 “예수…… 40일 내에…… 천국의 일을 많이 강론하시고”를 “천주의 일을”로 고쳤으니 종도행전 본문에 “천구의 일”로 분명히 되어있다. (Loquens de regno Dei.)
29. 321면=새공과에는 “너 성자의 잉태함을 이루신 기묘한 공을 위하여”를 전연 뺐다. (326면)에 “너를 섬기고 조찰한 마음으로 너를 기끼게 하소서” 중에서 겨우 그 첫 머리인 “너를 섬기게 하소서”만 옮겨 놓았을 뿐인가 하면 (336면) “우리 영광과 복의 종향이신 천주 성삼이여”도 몽땅 뺐고 (628)에 “예수여 마리아여 내 주여 내 영혼을 네 손에 맡기나이다”에서 “내 주여”를 삭제하였다. 이 “내주여”가 없이 “네 손에 맡기나이다”란 말이 성립될 수 없음은 그 상하문맥이 이를 증명한다. 와같이 공과 개찬자가 마음대로 삭제하고 느리고 뜻을 바꾸고 할 수는 없다.
30. 532면=옛공과의 “산중에 버리(보려) 있는 목석”을 “벌여있는 목석”으로 고쳤다. “벌여” 즉 “나렬해있는”과 “버려” 즉 “내버려져 있는” 것과는 같은 뜻이 아니다.
이상 30여 예와 같이 소위 새공과가 망쳐놓은 것을, 독자 제위께서 잘 보았을 줄 알고, 마지막으로 좀 우섭게 평할 조문 한두가지만 더 들고 마치기로 한다.
朱在用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