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중앙(中央)신용조합(信用組合)이 그간 제반준비를 마치고 곧 창립총회를 가진다고 전한다. 거기는 지도신부가 있고 이미 그 관계에 정통(精通)한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참여(參與)하고 있을뿐 아니라 노(盧基南) 주교의 권장까지 있으니 반드시 제외국(諸外國)의 그것과 동일한 발전을 기약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 과함이 없을줄 안다.
신용조합은 그 조합원으로 하여금 첫째는 검약(儉約)의 정신을 높이고 둘째는 유용(有用)한 목적에 융자(融資)하는 원천(源泉)을 장만하자는 것이다.
신용조합이 본래 직업 협회 또는 동일 지역에 거주(居住)하는 등 서로 빌접한 유대(紐帶) 아래 있는 사람들간에 상호부조(相互扶助)의 실(實)을 얻자는데서 출발한 것인 만큼 가령 한 회사(會社)의 종업원이라든가 어쨌든 친밀히 지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입을 수 있는 혜택을 이런 조합의 형식으로 더욱 효과있게 나누어가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뜻과 동일한 방법으로 신자단체인 교회 안에서, 보다 완전한 신용조합을 운영해갈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호부조의 형식은 재래 우리 고유(固有)의 것으로도 수많은 종류가 있고 방금 어떤 본당에서는 오랜 전통까지 유지하면서 명목만을 달리할뿐 실상은 신용조합으로 손색없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말고 듣고 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가톨릭신용조합」이란 명목을 빌려야만 하느냐 하는데 몇가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첫째 「신용조합 이란 이름아래 보다 철저한 감독과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겠다는 것이다. 대여금(貸與金)의 성격(性格)과 조건(條件)을 위원(委員)들이 공동으로 살펴갈 수 있으니 대여금(貸與金)의 회수력(回收力), 다시말하면 돈가저간 사람이 갚을만한 능력이 있느냐 하는거와 동시에 그 자금(資金)이 유효하게 활용되고 있느냐 하는 것 등을 공동으로 결정할 수 있다. 둘재 조합은 완전한 사무체계(事務體系)를 가지고 있다. 장부(帳簿)나 보고서가 일정한 규격을 갖추고 있어 기록 계산 등의 착오를 일으킬 수 없고 셋째 조합운영의 합리화(合理化)와 조합의 이익(利益)을 도모할만한 지도위원(指導委員)의 제도가 있어 부단히 조합활동을 자극(刺戟)시킬 수 있음을 열거할 수 있다.
이같이 제도로서 완전할뿐 아니라 조합원에게만 대여를 하용하며 이자(利子)는 최소한으로 정하고 (외국의 例로서는 月利 1%를 넘지 못한다.) 또그런 이자의 수입은 조합원의 저축액에 배당(配當)해주고 있는 것이다. 대여는 또한 조합원의 긴요(緊要)한 목적과 반드시 생산성(生産性)있는 목적에 한(限)하고 있다.
긴요한 목적이란 가사(家事)에서나 신변(身邊)에 피치못하는 돈쓸사정을 말한다. 생산성 있는 목적은 필히 조합원에서 혜탹이 돌아갈 수 있어만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우리는 「신용조합」의 이상(理想)이나 그 실용(實用)을 설명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번 가톨릭중앙신용조합이 당당한 창립총회를 가지게 되었고 또 한국서 처음 서느니만큼 우선 그 탄생을축하함과 아울러 「중앙」 「신용조합」이란 위치(位置)와 의의(意義)를 크게 평가(評價)하는 바이며 그 앞날에 적지않은 기대마저 걸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앞서 말한대로 지도신부 아래 그 탄탄한 기반을 먼저 닦은 다음 돌다리를 두들기듯 하여 비로소 발족의 단계에 선것으로 미루어 볼 때에 이만한 평가와 기대가 결코 과분치는 않을줄 안다. 다만 이런 기회는 앞으로 세워질 가톨릭중앙신용조합에 대하여 첫째 상당한 계몽기간을 가져달라고 하는 바이다. 뭣때문에 가톨릭신용조합이라 한 것인지 일반이 주지(周知)할 수 있는 선전에 인색하지 말것이고 둘째 적어도 수개소의 모범 신용조합을 두어 능히 본보기로서 손색이 없도록 하여 선전의 내용과 부합케 할 것이며 셋째 중앙이란 이름에 어긋나지 않는 권위있는 지도위원회를 가져달라는 것이다. 가령 지방에서 이 방면에 대한 관심과 의욕이 있는 이로서 문의(問疑)가 있을 때는 친절한 해답을 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고유의 실태(實態)를 족히 파악하며 도시와 농촌의 또 지역사회의 실정을 계속적으로 측정(測定)해가는데 많은 비용과 시간을 던질만한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방금 제주도에서 실효(實效)를 거두고 있는 가축은행(家畜銀行), 어민(漁民) 농민(農民) 등의 협동조합의 운영실황을 참고하여 교류(交流)책을 세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신용조합이 자선은행(慈善銀行)으로서의 의의(意義)보다 「가톨릭」을 부친데 더 많은 관심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