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개발에 관한 논의가 자자지고 있다. 지난번 서울서 있었던 지역사회 국제회의는 그 규모에 있어 아시아에서의 최대의 것이었다. 이런 회의나 학술적인 논의와는 달리 사실 우리 농촌·어촌·산촌 등지의 실정은 어떤가? ▲특히 우리나라 농촌은 도시의 기형적인 발전과는 대조적으로 나날이 여워가고 있음을 본다. 농촌은 사람들에게 생생발전(生生發展)의 기회를 주지 못하고 있다. 그 때문에 국토개발사업이 진해오디고 있짐나 그 정도로 이 막심한 농촌의 고통을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참으로 이 농촌의 건전한 발전책을 생각해 봐야 하겠다. ▲미국에서 가톨릭 농촌생활 전국대회를 가진 것은 1922년이었다. 구라파 역시 대체로 이만쯤 해서 농촌 문제를 활발히 눈의한 때이다. 미국서는 처음부터 농민, 교사, 사회학자 경제학자, 농업대행기관 및 관리를 총망라한 15000명의 조직체를 구성하고 가톨릭의 지휘를 받았던 것이다. 오늘 이 조직에는 전국 각 교구에서 정식으로 임명한 그 책임자만 117명이다. 이런 구미 각국의 노력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거기서는 도시와 농촌에 한국에서 보는 거와 같은 생활조건의 차별은 없다. 농촌은 오히려 모든 것이 풍부하고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할 만큼 이상향(理想鄕)으로 꾸며져 가고 있음을 본다. ▲지역사회의 개발과 발전이 없고서는 도저히 전체사회를 가밀(豊富)케 할 수 없다고 본 것은 우리의 큰 자각이었다. 이를 전적으로 시인하고 적근적인 성원을 보내야 하겠다. 미국에서와 같이 가톨릭 악숀의 일부로 해나갈만하다. ▲사실 가톨릭의 성원없이 이 농촌개발사업을 크게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톨릭은 처음부터 이를 선견(先見)하고 유능한 성직자들이 흠연 농촌으로 들어가서 성당과 여러 부속건물을 세우고 계몽에 이바지 해왔다. 최고학부를 거친 젊은 사제들이 벽지의 모든 악조건을 무릎쓰고 그곳을 개발해왔따. ▲다만 이런 일이 좀 더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더 큰 성과를 걷을 수 있겠다.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방도란 지역적으로는 교구에 본부를 두는 「악숀」 조직일 것이다. 남들은 1920년대(代)에 한 일이지만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할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