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우리들은 국회의원 총 선거만으로도 네번의 경험을 가졌다. 그러나 다가오는 7·29 선거만치 우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일은 없다고 본다. 모든 국민이 해방후 초대 국회의원을 선거할 때에 못지 않는 감개(感慨)와 보다큰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반독재혁명이 젊은 학생들의 피를 바쳐 세운 제2공화국을 정치적으로 건설해 나갈 초대 민의원과 참의원을 선거하는 영웅적 감개와 짧은 경험이면서도 부정선거로 인한 피해를 몸서리나게 받아온 백성이기 때문에 복바쳐 오르는 의분(義憤)과 정의감에 분발하여 이번부터는 새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을 옳은 대의원을 뽑아내겠다는데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신생 제2공화국이 내각책임제라는 의회정치체제를 갖추었기 대문에 국민의 복지와 국가의 흥망이 앞으로 선출될 의원들의 손에 매였다는데 있어서 더욱 그러한 것이다.
우리들은 난립(亂立)된 많은 입후보자 가운데서 진실하게 우리의 복지를 맡아 줄 만한 옳은 대의원을 뽑아야 한다.
정당(政黨)마다 훌륭한 정강을 내걸고 입후보자마다 매력있는 정견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은 그들 중 대부분의 신의(信義)를 의심하게 되었고 일단 당선되면 국회의원이라는 망상적인 세도와 권한으로 선거민의 여런과 백성의 복지를 농단(壟斷)하고 자신의 치부(致富)와 일가의 변영에만 몰두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와같이 선거민을 기만하는 정상(政商)을 먼저 책하여야 할 것이나 동시에 그러한 불량배(不良輩)에게 투표한 유권자는 모든 백성과 만대의 후손 앞에 국정을 어지럽힌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법제상(法制上)으로는 일단 당선된 국회의원은 그 선거민이 감독하고 제재하는 아무런 규정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차기(次期)에 재선되기 위한 정략적인 자률외에는 하등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물론 자기구역 선거민의 지역적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 전체의 복지를 대변하여야 하는 것이다. 건전한 지역복지는 곧 국가 전체의 복지가 되는 것이다. 3천만 백성을 배신하는 국회의원도 형사법과 징계법에 걸리지 아니하는한 떳떳이 제 임기를 마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들은 자진하여 대변인이 되겠다는 그들의 사상과 지식과 인품을 면밀히 검토하여야 할 것이오 당선만을 위한 정략적 정견과 규탄에 현혹(眩惑)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특히 이번 출마상(出馬相)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과반수가 넘는 무소속(無所屬) 입후보자의 난립과 혁신세력의 처녀등장이다. 정당정치를 지향하는 내각책임제 국가의 국회에 과반수가 넘는 무소속 출마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들어보지 못한 익살스러운 현장이다.
무소속은 정당이 아니기 때문에 특히 개인별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십분 납득되는 부류가 있다. 즉 정당생활이 허용되지 아니하는 교수나 기타 공무원으로 있다가 제2공화국의 탄생을 계기로 가지 출마하는 신진정치가들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 있어서 학계(學界)에서 출마자가 많이 생겼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한편 증오의 대상인 과거의 독재정권을 이룩하고 있던 자유당원 또는 그 동조자 가운데서 유권자를 기만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무소속이란 간판을 들고 양의 털을 쓴 이리와 같은 정상배와 뚜렷한 정견이 없거나 혹은 정치적 공명자(共鳴者)가 없는 기형인(畸形人)이 많이 혼재되어 있다는데 깊이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혁신세력의 대두는 그 자체의 가치뿐만이 아니라 보수세력의 방부제(防腐劑)로서 또한 큰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혁신세력은 아직 정치적 과거를 가지지 못했다는데 있어서 신중히 고려되어야 할 문제이다. 20세기의 혁신세력을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자유주의 자본주의를 근본사상으로 하면서 사회주의정책을 원용(援用)하여 자유주의 자본주의의 결함과 모순을 시정하려는 움직임과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 유물주의 사회주의를 근본 사상으로 하면서 자본주의 정책을 잠용(潛用)하여 자기모순을 극복해 보려는 움직임이다. 대체로 전자(前者)는 자유진영에 있어서의 움직이이오 후자(後者)는 공산진영에 있어서의 움직임이다. 그러나 공산진영의 세계적화(赤化) 운동은 이러한 틈을 놓치지 않고 공공연히 자유진영에 공산당을 세우는 것 뿐 아니라 혁신세력에 편승(便乘)하여 더욱 효과적인 무신론사상의 보급과 세계적화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현실이다.
종교는 정치에서 분리된다. 그러나 신앙과 도덕데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교회가 국가 위에 선다. 국가가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회의 우위권(優位權)을 인정하지 아니할 때에는 국가에 비극이 온다. 이 문제에 관하여 교회는 국가를 도와 선도하며 그 불의(不義)를 경고하고 단죄할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편 신자(信者)는 종교인인 동시에 국민인 것이다. 따라서 종교는 정치에서 분리된다는 말은 결코 신자는 정치에서 분리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들은 매일 몇번씩 천주경 가운데서 『…네 거룩하신 뜻이 하늘에서 이룸같이 땅에서 또한 이루워 지이다』라는 기원(祈願)을 바치고 있다. 그러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서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의 사상을 가진 많은 신자가 정치계나 행정계에 진출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동시에 우리들의 귀한 투표권을 한표라도 헛되이 하지말고 무신론자나 좌경(左傾)사상을 가진 입후보자의 당선을 경계(警戒)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