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우리 근세사(近世史)에 찬란한 민주혁명을 완수한 감격은 길이기억되고 또 언제까지라도 새로이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제 학생은 제자리(學生의 位置 或은 그 本然의 姿勢)로 돌아가 오직 학생으로서의 본질에서 줄기차게 자라나야만 한다.
여름방학을 목전에 둔 학생들이 학교당국의 휴가선언만으로 그냥 공백기(空白期)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민주혁명을 완수한 그 감격으로 최선의 해(방학)를 꾸며봄직한 일이라고 권장하는 바 한두가지가 아니다.
대학생들의 가톨릭 악숀은 교회의 모든 전교사업중 가장(最大) 중요한 것임을 새삼 말할 것 없다. 그들은 어느 사회서나 지도자가 된다. 헌데 그들은 대학에서 전수(傳授)받은 「이데오르기」 그대로 행위하고 행동할 것이기 때문에 오늘 대학의 그리스도화(化)는 앞서 말한대로 최대의 급선무인 것이다. 다시 지적하거니와 그들을 먼저 그리스도화 해야만 그들이 가는 곳(社會)을 그리스도화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톨릭 악숀을 강조하는 까닭은 여기 만일 매일 미사와 영성체 하는 치성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에게 남을(이웃) 생각하고 행동으로써 도울 수 있는 실천력이 없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런 신앙은 마치 열매를 장만치 못하는 식물이 운명과도 같을 것이다.
여기서 대학생들이 가톨릭 악숀을 실지로 어떻게 전개(展開)해나갈 것인가 하는데 몇가지 검토해 볼 일이 있다.
첫째 누구의 영혼(靈性的인 것이라 해서 무방하다)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고 그 사람과 이를테면 그의 취미 「레크레이션」등 일상의 전생활면에서 참으로 좋은 친구로서 접촉해가야 한다. 다시말하면 그가 아쉬워하는 벗이 돼야한다. 그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짝이 돼야한다. 이것은 가톨릭 악숀의 대원리(大原理)라고 할 수 있다. 그 연고는 신국(神國)은 땅위(地上)에 먼저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제둘레에서부터 먼저 그리스도화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구체적인 것으로서는 같은 학과(學科)를 통해서 취미, 오락, 스포오츠 혹은 영화 연극을 통해서 참으로 자연스럽게 접촉하면서 그들을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인의 특징의 하나는 자아(自我) 중심이라 할까 어쨌든 자기 안에 피난처를 구하는 경향과 다른 하나는 자기를 잃고 모든 표준을 그가 받는 강력한 영향 밑에 자기를 상실(爽實)하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의 인격은 완전히 정상의 궤도를 벗어나 불행을 감득(感得) 못할지경으로 마비되어저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우리에게는 가톨리지즘이라는 중심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닌 진리(眞理)를 먼저 제둘레에서부터 펴가야 한다는 것이 가톨릭 악숀의 또 하나의 대원리로 전에(前提)해야 한다.
대학생들이 이반에 사회에 섞여들거나 혹은 농어촌(農漁村)으로 파고들어 악숀을 한다는 것은 이것은 제둘레를 벗어난 짓(行動)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같이 제둘레를 벗어나 외딴 곳을 찾고만 있다면, 그러면 대학생간에 사도직은 누가 할 것인가? 대학에 있을 수 있는 학문상의 오설(誤說)은 누가 바룰 수 있겠는가?
또 본당에서 대학생들이 활발히 모여서 일하고 성가연습을 많이 하는 것도 봏은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본위치(제자리)는 어디까지나 대학이다. 대학에서 먼저 악숀을 하지 못하고 본당에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이는 마치 최전선(最前線)의 화전(火箭)을 고의로 피하고 있는 것과 다를바 없다. 대학에서 가톨릭 악숀은 본당신부도 할 수 없다. 오직 대학생 자신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거늘 본당안에서 대학생들이 성가만 높이 부르고 있어서는 그들의 시간과 정력은 너무나 낭비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해도 무리가 아닐줄 안다.
대학생들이여! 그대들은 대학속으로 돌아가서 거기다가 가톨릭대학생이 된 온전성을 다바치도록 하라. 그대들이 지닌 진리(眞理)가 대학 및 모든 학문의 척도(尺度)가 되게하라.
그리스도를 대학으로 모셔가자는 것이 곧 가톨릭학생운동의 전이상(全理想)이라고 하겠다. 이는 또한 빡스 로마나(국제가톨릭학생운동체)의 이상이기도 한 것으로 그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방법을 떠나서 재래의 관념대로의 학생운동체로서는 거센 바깥정세에 도저이 보조를 같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가톨릭학생들은 그들의 사도직의 장소가 다른곳 아닌 바로 대학안(內)인 것을 철저히 인식할 것이며 거기 한 산(生) 세포(細胞)로서 또다른 세포 그리고 또 다른 세포를 연결해가도록 해야하겠다.
이렇게 된다면 가톨릭학생이 그 조직에 있어서나 방도(方途)에 헤매(混迷)는 일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다시 한번 대학생사도직의 방향을 바로잡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