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씨름과 다른 기본적 차이가 아마 무기라는 조건에 있을 것이다. 씨름판도 승패로 마치기는 일반이나 끝나면 진놈도 털고 일어선다. 그러나 전쟁에서 진놈은 영영 뻗으러져야 한다. 진놈의 사정으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그러한 끝장은 「무기」가 결정한다. 1당10의 체력(體力)과 불타는 애족심이 소수의 용병(傭兵)들에게 실지로 패배한 「아프리카」 식민사(史)의 비극을 인증(引證)할 나위도 없다. ▲「간접침략」의 기본 공세가 사상에 있다면 그 「사상」이 바로 「무기」다. 사상이란 지성의 활동이다. 지성의 활동은 사고방식의 노선에 따른다. 사고의 참되고 거짓됨이 지성무기의 우열을 결정할 것이다. 무력 전쟁이 그 현지역의 지리를 떠나서 작전될 수 없듯이 사상전은 그 시대의 「현대심리」를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모든 시대의 호교자들이 자기시대의 「현대사상」에 통달했기에 당시 이단의 지적공세를 처부실 수 있었을 것이다. ▲유사이래 이단을 총화(總和)집대성하여 교회의 조직과 방법을 훔쳐다가 악용역시(惡用逆施)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직접침략」의 휴전선이 지척에 벌려졌고 그 「간접침략」의 도덕적 공세가 출판사와 극장에 그 지성적 공세가 가으이실에까지 침투했다. 그것을 「한국」 가톨릭이 방위할 수 있었던가? 순교의 뒤를 이어 받은 신덕에 투지가 없을리 만무하나 「지성」이라는 현대무기가 일반적으로 없었음이 전과(戰果)가 없는 원인이다. 신정부 아래 온 겨레의 지성이 대거 참여한 이 때 「한국」가톨릭도 겨레로서 보태줄 것이 없어서야 될 말인가? ▲신덕에 맞가운 덕행이 거듭 성찰되듯이 사고가 신덕에 일치되도록 지성적 재(再) 회두(Intellectual Reconversion)가 바로 이런때 요청되고 있다. 이에 거듭 목소리를 높이 질러 재촉하고 싶은 것은 역대의 현대 교황들의 회칙과 연설 가운데서 목전에 필요한 것부터 번역 출판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없고야 지성적 재회두도 있을 수 없고 「현대 생존 비현대인」을 면할 도리도 없다. 바야흐로 소리없이 치열한 지성전투의-사석(私席)의 한담에서도 유격전이 벌어짐을 똑똑히 명심하라!- 일선에서 하필 「한국」 가톨릭만이 원시 무기밖에 없었던 「아프리카」 토인의 옛날 신세가 될 게 무엇인가? 겨레의 사학가 <최남선>의 『겨레 앞날의 문명을 가톨리시즘에 맡기노라!』는 역사적 유언을 헛되이 말자! 지성으로 무장하자! 무기를! 무기를! 현대 교황의 회칙을! (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