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신」. 우리 실생활의 주변에는 아직도 이것이 여러 형태로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이것은 외인들의 사회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외인 사회의 큰 바다 가운데 산재하는 작은 섬들과 같이 놓은 우리 교우 사회 안에 비록 소부분일지라도 외인 사회와의 교호(交互)관계에 있어서 그네들의 미신과 아주 관련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가?
▲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 국민 가운데도 역시 「그리스도교적」인 미신이 있음을 예수께서 수난하신 금요일은 운수가 「불길」하다고 해서 출범(出帆)을 꺼리는 선장도 있고 「유다스」까지 합친 「13」이라는 수를 「흉」한 것으로 친다.
종교를 떠나서라도 과학적으로 사고해야 할 선진국민들도 그렇거늘 하물며 전교지방의 개종자들인 우리는 이에 관한 성찰이 한 층 더 필요하지 않을가?
▲ 「사주」를 보고 「점」을 치는 정도까지는 아니 가더라도 혼인을 정할 때 소위 「궁합」이라는 것을 맞추어보는 교우 아주머니가 전연 없다고 안심할 수 있을는지? 비록 『꼭 그렇다』고 확신을 않을망정 미신적 전통을 완전히 씻어버렸는지 살펴봄이 쓸데없는 짓일가? 특히 개인적으로나 혹은 집단적으로 무슨 곤경에 빠져을 경우에!
▲ 금년의 살인적 「가뭄」이 처처의 농촌에서 각종의 미신 행사를 일으키고 있다. 돼지를 잡아 제물(희생)로 바치고 비를 내려 주십사고 정성을 다해서 기도하는 「기우제」의 심리에는 「하늘」의 쎈스가 잠재한다. 이러한 원시적인 「경천」 의식은 올바른 신앙으로 개종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내 뒷산의 분묘를 발굴한다던가 하는 짓은 도저히 관용할 수 없는 일이다.
▲ 지난번 서양서 「천지개벽」설을 신부님이 교우들에게 타파해주어야 했던 지방이 더러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농촌 교우들 가운데 이번 가뭄에 시달리다 못해 약해진 마음을 이웃 동내 외인들의 미신에 기울이는 수가 없는지? 요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천주께서 내리시는 시련을 은혜와 마찬가지로 감사히 참아받아들이는 『고난의 신덕』이 바야흐로 이런때에 발휘됨직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