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외상이 공식적으로 예쩡된 6일에 우리나라에 왔다. 많은 수행원과 20여명의 통신관계의 인사들을 대동하고 일본 비행기로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태극기와 나라이 「히노마루」의 일본국기가 맑고도 높은 한국의 하늘을 같은 높이와 같은 방향으로 나부꼈고 우리에게는 결코 단순한 감정이 될 수 없는 「기미가요」 일본국가가 취주되었다.
어제와 오늘이 이처럼 급변(急變)할 수 있으랴 싶다. 실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금치 못하겠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제2공화국의 탄생을 축하하고 우의를 돈독케 하기 위하여 말하자면 「인사차」오겠다는 것이고 또 우리 정부도 이것을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선린(善隣)을 맺으려는 우방국가로서 피차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과거의 가지가지 쓰라린 경험과 뼈져리는 기억을 잊고 형제로 이 손을 잡아보자는 생각과 노력을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모든 이유를 떠나서 우리는 환영하지 않을 수 없 바이며 또한 본란(本欄)도 이 기도(企圖)와 노력을 환영하며 진실한 선린국가가 되어지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그러나 정치계나 경제계나, 외교진에서 이처럼 한 노력을 하고 있을 때 우리교회는 무엇을 했느냐. 일제시대에도 하나의 교회, 하나의 신앙, 한 하늘아래 주의 의자(義子)들이 멀리서 보고만 있지 않았던가 싶다.
그리고 해방이 되어도 미주(美州)나 구주(歐洲)의 교우들과는 연락이 되면서 동남아세아 각국, 특히 극동제국 중 가까운 일본의 교회와는 이렇다할 관련을 가질 생각을 미처 가져보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른 것이다.
국경을 사이에 둔 독(獨) 불(佛) 양국은 수백년의 역사가 두 민족을 보담 더 할 수 없는 원수를 만들고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켰지마는 전쟁의 재더미 속에서 「그리스도의 평화」운동이 일어나자 불란서 교우들은 원수의 나라 독일에 성당을 지어주고 독일은 불란서에 역시 성당을 건립하므로써 두 나라의 교우들은 그 성당에서 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평화」를 기도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이 참된 그리스도교의 운동이 오늘날 정치를 지도하고 서구연방운동에까지 발전하여 지금 이 운동이 활발하게 움지기고 있지 않는가. 우리도 정치의 피안(彼岸)을 바라보며 실로 「그리스도 안에 평화」를 찾는 일에 무관심할 수 없다.
정치나 경제는 세상의 것이다. 영원한 평화, 진실한 선린은 그리스도의 한 푸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일본교회와 각 방면에 궁한 보담 더 긴밀한 교류를 맺아 하나의 교회의 실증을 가지므로써 우리의 조국과 그들의 나라가 속이지 않고 속지 않는 정치와 외교를 할 수 있게 노력할 것을 여기에 강조하는 바이다.
소위 「문화」라는 명목아래 우리의 주변에는 무엇을 일본에서 가져오고 있는가. 많은 학술서적에 찌어 무신론적 공산주의 사상을 위시하여 각종의 반교회적 또 반국시적(反國是的)인 서적들이 잠입하고 있느가 하면 한편으로는 미풍양속을 물라나게 하는 부도덕한 서적, 잡지들이 거리에 범람하고 있다.
4·19를 마치 모든 질서를 파괴해도 좋다는 듯이 모든 윤리와 도덕을 무시해도 좋다는 듯이 간상모리배들은 제각끔 벼라별 「루우트」(經路)를 타고 이러한 서적을 돌여 놓기에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상태에 더구나 대일국교가 다시 열려 활발한 외교와 아울러 경제교류가 제 궤도에 오르게 되느 ㄴ날은 이 틈을 타고 또한 문화교류라는 미명아래 우리의 주변은 더욱더 어지러워질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정부당국의 강력한 시책도 기대하겠지마는 우리 교우들의 각오도 새로워야 할 것이다. 경제적 형편이 좀더 나아진다고 인간의 체면을 손상시킬 수 없다. 천하를 다 얻어도 영혼에 해로운 일을 할 수 없고 영혼을 죽이는 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