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 이날 이 나라에 참으로 뜻깊은 일이 있었다. 그것은 「대구」에서 장차 「갈멜 수녀원」으로 낙성될 건축의 첫 주추가 <서> 주교님의 손으로 놓여진 것이다.
「갈멜」은 성지(聖地) 「파레스티나」의 「사마리아」에 솟은 산의 이름이다. 「구약」시대에 <엘리아> 선지자가 제자들과 더불어 천주와 일치하고자 늙도록 이 산을 오르내렸던 것이다. 그런이래 「야-베」(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손들이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 그리스도의 시대까지 대를 이어왓었다. 「신약」이 완성된 후로는 그리스도교도가 역시 이 영산(靈山)을 심령수련(心靈修鍊)의 도량(道場)으로 골았었다. 초대 몇세기동안 「그리스도교 도인」(道人-은수자)들이 모여들어 570년에 비로소 암자(庵子)를 짓고 수도원이 형성되었다. 특히 성모께 대한 신심(信心-Devotion)으로 「갈멜산 성모회」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회」(Order-修道團體)는 세기를 이어 속세를 해탈(解脫)하려는 발심(發心)을 채워왔다. 그리하여 그 분원(分院)이 「구라파」 각국에 보급되었고 전교지방에까지 진출되었다.
이 「회」의 청규(淸規)는 정결, 청빈, 순명(貞潔·淸貧·順命)의 3덕(德) 서원(誓願)은 다른 「회」와 일반이나 다만 외적(外的) 관상(觀想)에 치중한다. 그 수도자들은 평생을 봉쇄(封鎖) 안에서 고신극기(苦身克己) 하면서 노동과 관상으로 보낸다. 그러나 한암고목(寒巖枯木)식의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이루는 것이 아님은 이미 우리에게 친숙(親熟)한 이 「회」 출신의 <예수영해 소화 데레사> 성녀만을 보아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성녀 외에도 <십자가의 요왕> 성인을 비롯하여 성인성녀가 배출한 이 「회」를 존경할 때 우리의 사모(思慕)는 멀리 16세기로 치올라 당시 진정한 종교개혁자이었던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를 기억아니할 수 없다. 그것은 이 <대(大) 데레사>가 극도로 해이(解弛)했던 당시의 「갈멜」을 개혁 아니했던들 뒷날의 <소(小) 데레사>를 바랄 수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그 「개혁」의 영향이 교회 전체에 미쳤고 현대로 내려와서도 우리 신비체험의 지침이 되고 있다. 특히 당시 「구라파」의 소위 「종교개혁」의 파동(波動)을 「스페인」의 국경에서 막아내는데도 이 진정한 「개혁」의 이바지가 컸었고 지성으로 조절되고 적당히 강조된 그의 「인간성」이 당시 우울하던 그 나라의 교회를 다시 명랑하게 한 것은 20세기 「이타리」의 <아씨지의 프란치스코>에 못지 않았다. 현재 우린느 사회적 세력을 가진 각종 이단 사상에 포위되어 있고 우리 내부에는 비록 국부적이나 「겟토」식으로 굳어진 부분을 본다. 이런 시기를 맞추어 「서울」 「동래」에 보태어 「대구」에 또 하나의 「갈멜」을 가지게 됨은 전국적으로 그 의의가 아니클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소란한 타악기의 광조(狂躁)한 「템포」에 정서의 수습을 못하고 막다른지 오랜 「논리」에 사색이 막히고 소위 「실존」에 「공허감」(空虛感)을 메우지 못하는 이 즈음에 「심궁칠실」(心宮七室- 대 데레사의 저서 - Interior Castle)의 가장 속깊은데를 내관(內觀)케 하여 견신성성(見神成聖)의 길을 열어주는 「갈멜」의 종교적 가치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웅변의 「부흥회」, 열광의 「간증」, 기사이적(奇事異跡)의 「안찰」 「교파의」시인(是認) 내지 「광신」의 분규 등등이 저지르고 있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일반적 곡해가 또한 이 「그리스도교 선원」(禪院)으로 말미암아 바로 잡혀질 것이다. 따라서 「노장」(老莊) 또는 「대승」(大乘) 내지 「선」(禪)에서 우선 「안정감」에 머물으로 있는 인사들은 「서구」(西歐)적으로만 알았던 그리스도교 안에 이제 이 「회」의 신비행활을 통하여 동양적인 모습을 새로 발견할 것이다. 이와같이 전망할 때 이번 정초식의 의의가 더욱 커짐을 느낀다. 멀리 「파레스티나」의 「갈멜」산에서 내려와 「스페인」의 「아빌라」를 거쳐 「오지리」의 「마리아 쉘」을 떠나서 「대구」에 이르러 「앞산」에 개산(開山)할 이 「갈멜」에 관련된 섭리를 찬탄(讚嘆)아니할 수 없다.
고 <최> 주교님께서 이 기지를 마련하시던 당시 이 「회」가 올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며 「마리아 쉘」에서도 결정 직전까지 「앞산」을 알았을리가 없다. <서기호> 신부가 「오지리」 여행중 우연히 들렸던 어느 가정에서 발견한 쉬여운 어린고아의 내력을 물은데서 「마리아 쉘」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또구경가게 되어 무심코 주고받는 대화(對話)를 계끼로 즉석에서 즉각에 결정이 되어 이번의 성과가 이루어진 것이다. 어린 아이로 되돌아가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느니라는 교훈을 연상케 하는 이 섭리적 「오지리」의 돌발사건이 『그리스도교에도 심원한 명상이 있느냐?』는 이 나라의 식견없는 질문을 무언(無言)의 사실로 대답할 계기가 되었음을 특별히 축하하여 마지 않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