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26일로서 우리는 설흔다섯번째의 순교기념절(殉敎記念節)을 맞이한다. 즉 1925년 7월 6일 당시의 교종 <비오>11세께서는 성 베드루대성전 베드루의 교좌(敎座)에서 한국의 순교자중 주로 1839년(憲宗·乙亥年)과 1845년(憲宗·丙午年)에 위주치명(爲主致命)하신이 79위를 「복자(福者)」로 선언하심으로써 한국순교자들의 그리스도의 증인(證人)으로서의 진리와 정의(正義)를 위한 호용(豪勇)과 거룩한 덕행을 전세계에 소개하시고 아울러 그들의 성덕을 추모(追慕)하며 그 행위를 본받도록 권장하고저 9월 26일을 한국교회에 있어 1등축일로서 기념할 것을 반포하셨던 것이다.
『밀씨가 땅에 떨어져 써기 아니하면 그 한낱만 남아있을 뿐이로되 만일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니……』 (요왕 12, 23-24)라고 하신 예수께서 당신이 몸소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시고 가르치신 이 진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는 초창기에 있어서는 어느국가나 민족을 막론하고 가톨릭신앙은 순교자들의 선혈(鮮血)로서 거름줌이 없이는 그 땅에서 뿌리를 밖고 성육발전하지를 못하였으니 『순교자의 피는 신앙의 새싹』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사실은 세계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바이다. 그리하여 우리 한국 성교회 역시 이 범례에서 제외되지 않았을뿐 아니라 세계교회사에서도 그 유례가 없는 특이한 경로를 거쳐 복음을 우리 민족 스스로의 손으로 받아드렸지마는 1801년의 큰 교난(敎難)으로부터 시작되어 1882년 당시의 우리나라 조정(朝廷)과 구미 여러국가들 사이에 수호조약(修好條約)이 체결되기에 이르기까지 80여년동안에 걸쳐 신유(辛酉) 기해(己亥) 병오(丙午) 병인(丙寅) 등 4대의 혹독한 교난(敎難)으로 말미암아 약 1만명의 목숨이 진리를 증명하기 위하여 피를 흘려 참된 종교의 초석(礎石)으로 되었던 것이다.
『순교자』란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와 도덕을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도 용감히 표명하고 실천함으로서 그 목숨을 잃어버린 이들을 가르치는 말로써 그 어의(語義)에 있어 『그리스도의 증인(證人)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전투(戰鬪)의 교회』인 가톨릭교회는 2천년의 존귀한 전통과 빛나는 승리의 역사를 지녀오면서 끊임없이 도전해오는 암흑(暗黑)의 세력과 피투성이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으므로 그 시대와 장소에 따라 순교의 양상(樣相)은 다르지만 선혈(鮮血)의 역사는 언제나 계속되고 있는 것이니 현재에 있어서도 저 공산치하 철의장막 안에든 『침묵의 교회』와 그 안에 있는 수천만의 형제자매들이 형용할 수 없는 각가지의 박해 가운데서 우리들의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자유진영의 여러나라들의 사회 안에서도 직접 정치적인 권력으로 박해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퇴폐한 도덕과 온갖 반교회적인 요소가 너무나 많은 것이며 우리의 주변을 둘러볼 때 아직 전국민의 1.5%에 불과한 교우 수로서는 신자 한사람 한사람이 그야말로 초대(初代) 종도시대의 교우들과 같은 자각(自覺)과 긍지를 갖고 우리 순교선열들의 본을 받아 신앙자 다운 행동과 덕성으로 이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어야 할 것이 요청되는 것이다.
우리는 영세(領洗)할 때에 『마귀와 그 영광과 체면을 끊어버립니다』하고 서약하는 순간 이미 순교할 것을 맹세하였던 것이며 우리의 생활 전체가 순교정신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 신자의 생활과 순교자의 생활이 따로 분리되어 있을 수 없을진대 순교정신의 발휘는 곧 우리의 일상 사회생활면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자각(自覺)과 발문에서 우리 순교선열들의 생활과 우리의 현재 생활을 반성해 볼 때 첫째 그 분들의 교회유지(維持)에 대한 자립자치(自立自治)의 정신과 자기 본분에 대한 철저한 자각을 본받아야 할 것이며 둘째로 동포구령을 위한 전교의 열성, 셋째 성직자들을 바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받드는 깊은 신덕에서 우러나온 그 종경심을 배워야 하지 않을가.
우리나라보다 교우 수에 있어 반밖에 되지 않는 이웃나라 일본에 본방인 추기경이 나고 대주교좌구교구가 2개처나 있는 것을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대목(代牧)교구를 면하고 포교성성의 재정적 원조를 받지 않고도 유지해 갈 수 있는 완전한 자체교구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 아닐가.
교정신은 일상생활에서부터 타성적(惰性的)인 신앙태도의 묵은 껍질 속에서 해탈(解脫)하는 것이며 이러한 발분의 행위만이 순교선열을 참되이 추모하는 것이며 순교기념절을 뜻있게 마지하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