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까지 다녀간 현 「이태리」 외상 <세니>씨는 이(伊) 국민들의 존경을 모으고 있는 분이다. 그의 미소는 친밀감을 주기에 족하다. 그는 정치보다 인간에 충실한 편이고 당(黨) 보다는 조국을 먼저 생각하고 있음을 그의 경력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는 ▲1891년 지중해 명상의 섬 「삿사리」에서 탄생, 「삿사리」 대학을 거처 법학박사를 받고 중부 「이태리」 「뗄쟈」대학에서 시민법 강의를 담당 「빠비아」대학 「로오마」대학 다시 고향인 「삿사리」대학으로 교수생활을 계속해왔다. ▲가톨릭 정당인 인민당(人民黨)에 가담, 사회적익ㄴ 발전에 정당인으로서 정진했으나 「파시스트」당이 나서자 조용히 정계를 떠났다. ▲1942년 인민당을 계승하는 그리스도교 민주당 창설에 나섰다. 그리스도교 민주당 「살디니아」 지부장을 거처 <데·가스페니> 내각의 농상(農相)을 지내면서 대담한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조국의 농업발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1949년 FAO(國際農業食糧__) 본부설립에 그 소제지를 「로오마」로 유치하기에 진력하여 성공하였다. ▲그 후 수상(首相)이 되고 그 자리를 물러서면서도 계속하여 국방상 외상으로 옮기면서 그의 지성(知性)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세니>씨는 자기 고향을 사랑했다. 그가 어떤 지위에 있을 때도 「로오마」 「살스락아나」가의 아파아트 생활을 하고 있다. 자기 방에는 언제나 여행 가방을 준비해 두고 매 토요일은 고향 자택으로 돌아가서 즐겼다. ▲그는 신사적이요 중도(中道)를 벗어나는 일이 없는 정치가이다. 그러면서 그는 농업법(農業法)의 제1인자이다. 대학교수 다운 그의 태도를 버리지 않는데 온갖 힘이 있는듯 그는 어느 장시간의 의론(議論)에서도 우유 한 잔과 오랜지쥬우스에 빵조각으로 식사를 제때에 한다. 고(故) <데.가스페리>씨는 그를 평하여 『그는 수상이기에는 너무 대가 약하다. 그 약한데 아무도 따를 수 없는 힘이 있다』라고. ▲그의 몸에 꽉 찬 그리스도교적 요소(要素) 그는 입으로 자기의 신념을 토할 수 있었다. 확신에 충만된 민주정치가요 자기 의견을 말할 때도 이 신념과 확신에 울어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임기응변(臨機應變)의 정치가는 아니다. 벼락감투를 쓴 정치가는 아닌 것이다. ▲지난 5월31일 일본을 방문한 <세니>외상은 다음 성체첨례날 아침 일찍 동경 「6本木」 성 프란치스꼬 수도원을 방문하고 미사에 앞서 고해성사를 받고 또 영성체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