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일 6.25 열한돐을 맞이한다. 10년 일석(一昔)이란 말이 있듯 그 당시의 기억은 더듬어서야 새롭다. 지금 대학생들이 겨우 국민학교적이었고 그때 태어난 아이들은 당당한 국민학교 아동들이다.
산천(山川)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간의 젊은 제2세들이 이같이 성장한 것이다. 그래도 「6.25」의 기억은 그 어느 추억처럼 망각(妄却)의 계절(季節)을 장만해 주지 않고 해마다 절박(切迫)해지는 우리의 현실과 더불어 더욱 강렬한 추념에 사못치게 하지 않는가.
6.25를 하나의 민족적인 비극으로 돌리기에는 그 역사적 의의(歷史的 意義)는 너무나 중대하다. 또 세계사(世界史)의 견지에서 이를 회고(回顧)케 해주는 바가 너무나 많다.
최근 「뉴욕」에서 『다글러스.막아더 장군 이야기』란 소책자가 발간되었다. 그 당시 한국전선을 지휘하고 총반격의, 참전으로 전장병들의 사기(士氣)가 충전하여 북진(北進)하고 있을 무렵, 1951년 4월11일 <투루만> 대통령은 그를 「유엔」군 총사령관의 직에서 해임한 바 있었다.
그 뒷이야기를 실려 자못 이야기꺼리가 되고 있는듯 하다. 이 책자에는 이런 구절도 있따. 『<프란크린D.루즈벨트>는 미국인이 죽엄으로 얻은 승리의 과실(果實)을 「러시아」에 넘겨주었다』라고.
1943년 11월 「루즈벨트」 대통령은 「태에란」으로 <스타린>과 전후처리를 위한 정상회담을 하려하던 도중 「카이로」에서 장개석 총통과 회담하고 일본군에 점령당한 만주를 포함하는 중국영토를 반환하는 동시에 한국은 『해방되고 독리보딜 것이다』고 했다.
이 내용을 알게된 사람들은 극히 상식적으로 판단하기를, 만일 이 야곡을 지켰으면 중국이 공산화 되지 않았고 한국전쟁도 없었을 것이라고. 물론 한국이 분단되었을리 없고 그 많은 「유엔」군의 희생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6.25전쟁도 없었겠다고 할 수 있다.
1945년 2월의 「얄타」회담 역시 그때 <맥아더> 장군으로서는 일본군을 완전히 격멸시킬 직전에 있었다. 그러나 「아시아」 진출의 절호(絶好)의 「챤스」를 얻었다고 생각한 「러시아」는 「얄타」회담을 합법화 시켰다. 그때 <루즈벨트>를 보좌한 공산당 <알제·힛스>는 미국무성 직원이었던 것이다.
이같이 만들어진 역사를 지금에 와서 탓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겠다. 또 대중의 인기(人氣)에 편승(便乘)되고 있는 소책자를 덮어놓고 믿는다는 것도 떳떳치 못하다. 간혹 하나의 단견(短見)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일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 그러한 「센세이슈날」한 소리가 우리에게 큰 자극을 주는 바 없다. 그만큼 적의(공산당) 진상을 잘 알고 있는 때문이라 할까.
5.16 군사혁명을 민중이 받아들인 가장 큰 까닭의 하나는 반공체제를 재정비(再整備)하고 강화한다는데 있었다. 이는 수만언(數萬言)의 설명보다 뚜렷한 증거이겠다. 우리 민족의 자랑은 곧 여기 있는 것이다.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같이 인격(人格)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해방이 되자 우리도 모르는 틈에 국토는 양단되었다. 이남에서는 자유가 범람하는듯 했고 북에서는 공산체계가 섰다. 이북의 공산화는 결코 사상이 먼저 있은 것은 아니다. 일제 때 모든 생활에 통제(統制)의 굴래가 세워져 있었던 것을 그대로 공산통제로 치환(置換)했을 뿐이다. 이렇게 급지기 들어선 체제 위에 다음 단계는 사상의 주입(注入)이였다. 공산통제하에서는 아버지나 누이가 다 「동무」라고 칭한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도무지 우리 생태에 맞지 않은 탓만으로도 이에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인격의 근원에서 뒤집어서 말하면 인간존엄의 원천에서 이 노예제도를 비판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란 뜻을 이렇게 느끼고 있다. 사람, 그는 동물과 철저히 구별되며 그는 도덕을 또한 생명과 같이 생각고 있는자이나 이것이 단지 유가(儒家)의 전승(傳承)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철두철미한 민족성을 이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아니다』고 하면 이보다 더한 모욕이 없다고 하는 것이 곧 우리 고유의 얼인 것이다.
이렇게 본질적이요 근본적인 우리의 사고(思考)와 감정에서 현대의 노예제도이요 어마어마한 집단 생산조직인 공산국가를 우리는 사무치도록 배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6.25의 모든 사상적 의의(思想的 意義)가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절박한 현실아래서도 반공구호를 부르며 보다 완전한 자유를 지향하고 있느니 만큼 실망할 줄 몰라야 하겠다. 지금 전국민의 흉중에 있는 한가다가 희망은 하루속히 온갖 불의(不義)와 부정(不正)과 부패를 제거하는데 있다. 그리하여 우리사정에 알맞은 복지국가를 건설하는데 있다.
전술한대로 「루즈벨트-스타린」이 한국 분단의 역사를 장만했고, 김일성이 남침을 지휘했다는 것 등은 비록 그것이 사실(事實)에 속하는 사실(史實)은 될 수 있어도 우리의 벅찬 건설의 의욕 앞에 이미 아물고만 소소한 상처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서도 그리스챤의 영광은 여지없이 발휘될 수 있다. 그것은 오직 실망치 않는 흔건한 가톨릭적 낙관(樂觀)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거리에 나붙은 색색의 반공구호 그것보다 저높이 바라보는 십자가 종탑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겠는가. 공산당이 가장 두려워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치스」의 가장 거치장스런 존재가 바로 그것이 아니었던가.
주일날 맞이하는 「6.25」이라 더 한층 감명깊은 바 있다. 조용히 주일미사를 참례하면서 맞이할 우리의 이날. 사랑의 조직인 가톨릭 교회와 미움(憎惡)의 조직인 공산주의는 이렇게 날마다 대결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에 불타는 예수 성심 안에 제악(諸惡)이 연멸(煙滅)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