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JOC(가톨릭 노동청년회)의 현황을 평가하거나 지난 업적을 말할 시기(時期)는 아니다. 왜냐면, 이제 겨우 3년 남직한 성장을 해왔고 또 JOC운동의 본궤도(本軌道)에 오를 전야(前夜)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국 JOC는 본궤도에 오를 전야에 서 있다고 했다. 그 때문에 이 시기는 가장 중대한 순간을 겪고 있음을 또한 인식해야 하겠다. 본궤도에 오른 다음에는 마치 힘찬 기관차(機關車)와 같이 우렁차게 달려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JOC는 본래 평신자 사도직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적극성 있는 사회면(社會面)에서의 평신자 사도직인 것이다. 사회면에서도 노동사회의 심히 격렬한 숨결 속에서 오직 과감한 행동을 동반하는 현대의 사도직인데 그 특수성이 있는 것이다. 여기 동원(動員)되어야 할 제반준비는 참으로 친밀하고 계획성이 있어야 하며 또한 넉넉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 JOC는 지도신부와 관여자들이 충분한 예비지식을 갖추었고 국제회의와 국제교류 등을 통한 참신한 방법을 시행하고 있으며 금번 JOC 아시아 지도신부인 「쟝.뮐구」 신부의 내한은 여기 큰 박차를 가해주고 있다. 「뮐구」 신부는 각지에서의 직접지도에서 『진짜(眞正한) JOC』 운동을 강조했다. 물론 이 말이 가짜에 대(對)한 진짜를 뜻하거나 한국의 그것을 지적해서 한 말은 아니다. 그가 강조한 것은 본격적인 가톨릭노동운동을 말한 것이요 본궤도에 오른 JOC 운동을 지칭한 것으로 여긴다.
본궤도에 올라야 할 한국 JOC의 당면과제(課題)에는 이런 것이 있을 것이다.
첫째 조직이다. 이 조직의 강화와 발전이 없고서는 무엇을 실행해갈 수는 없다. 지난 3년간의 조직상황을 보건데 지나치게 신중을 기하고만 있는 감(感)도 없지 않다. 그러나 25년간의 JOC 전문가인 <뮐구>신부는 오히려 이런 한국 JOC의 성장과정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런 비유를 들었다. 『식물(植物)이 착근(着根)할 때는 지나치게 신중하고 이것 저것 가리기를 잘해야 하지요』라고. 그러면서 그는 다음 말을 잊지 않았다. 『이만한 터전(基盤)을 장만했으니 전국 각 교구에서 이제는 아낌 없는 성원을 보내야합니다. 한 본당에 수천명의 신자를 가진 것은 한국의 자랑입니다. 또 한국교회의 큰 힘입니다. 이런 본당에서 무슨 일을 못하겠읍니까』고 하는 것이었다.
둘째 전국적인 활동이다. 전국적인 관심, 전국적인 목표는 조직을 강화할 수 있는 큰 요소이다. 큰 목표 혹은 큰 문제는 항상 정신적인 힘이 되어주는 법이다. 그것은 결국 자기의 문제로 실현(實現)되어야 할 것은 더 말할 것 없다. 전국적 위원회, 연구회, 행사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은 결코 형식적이요 외적(外的)인 것이 아니다. 세계 JOC의 많은 경험에 의하면 이보다 청년들을 격려해주고 자기들의 조직을 강화시켜 주는 길은 없는 것이다.
셋째 조사활동(調査活動)이다. 여기엔 전문지식이 동원되어야 한다. 이것은 또한 연구활동도 겸해저야 한다. 일본 「죠시스트」(JOC)의 그것을 소개하면, 51년=일하는 청년들의 급료, 52년=일하는 청년들의 문예(文藝) 「구룹」, 천년들의 「구룹」 만들기 53년=주택활동 54년=불건전한 오락, 환경의 쟁화 부량출판물, 영화, 마약 추방운동, 55년=노동운동과 「죠시스트」, 문화운동 56년=노동자와 JOC의 진로(進路) 57년=청년의 노동시간에 관해서 58년=일하는 청년과 결혼 59년=현대의 청년노동자 60년=평화한 사회건설 등이었다. 그리고 금년도는 일하는 연소자(年少者)를 위한 운동이다. 어린 사람들이 불우한 환경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때를 보내고 있는 그들의 노동조건을 조사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청년노동운동의 긴요성을 백번 강조해서 심한 것있 아니고 오히려 부족할 것임을 더 뇌어서 무엇하랴. 앞서 말한 <뮐구> 신부의 관찰을 되풀이 하거니와 한국처럼 한 본당에 수천명의 신자를 가지고 있는 곳은 전세계에 드물겠다고 한다.
그것은 한국의 자랑이요 큰 힘이라고 했다. 그 수천명 신자 가운데 일하는 청년, 노동자의 실태를 파악하고 그들을 이끌어 줄 이 JOC조직은 시급하며, 이는 곧 본당의 권리요 의무인 것이다. 대학생들이 무슨 학술적인 고상한 모임을 가지고 휴가를 즐기고 합창단의 연주회가 있고 하는 동안, 이 일하는 청년 노동자의 존재를 잊고있지 않는가. 그들을 잃고 있지 않는가. 학생조직이나 성가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면 이 노동청년 조직이 또한 반드시 있어야 한다. 농촌에서는 농촌청년 조직이 있어야 한다. 숫적으로 풍부하다는 것은 한 본당을 단위로 한 말이겠다. 사실 본당은 비좁은데 신자수는 날로 늘고 있어 즐거운 비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현대에 있어서의 교회의 참 사명을 냉정히 생각해보자. JOC 창설자 <까르다인> 몬시뇰의 말씀대로 본당은 그 영향을 그 본당과 가장 가까이 있는 대공장 안에 미처 주지 못하고서는 슬픈 일이다. 무슨 방법으로? JOC와 같은 백% 성공적인 방법을 곧 쓰볼 일이다.
우리의 사도직에의 열의(熱意)는 그 발산(發散)할 곳을 구하고 있다. 우리의현실이 착잡하고 암담할쑤록, 나갈 길을 막는 장애가 욱심 할쑤록 우리는 견진성사의 은혜로서 받은 슬기로운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견진성사는 이미 우리 안에 이만한 굳센 보루(堡壘)를 구축해 주고 있지 않는가.
한국 JOC는 마치 좋은 땅에 떨어진 씨(種)와 같다고 한 「뮐구」 신부의 말씀을 단순히 치하(致賀)의 소리로 돌릴 수 없다. 그것은 무한(無限)히 발전할 장래를 예견한 「관찰」인 동시에 지금 곧 물주고 거루어야 할 중대시기인 것을 경고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