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금년도 교세통계(敎勢統計)에 의하면 남한의 신자 총수는 451,808을 헤아린다. 이를 남한 총인구 2천4백만에 비하면 50대 1 정도이므로, 그리 많은 수로 볼 수는 없으나 5년전(1955년도)의 신자수 215,552에 비겨 배 이상이 증가임을 생각할 때 놀라운 발전인 것이다.
여기서 잠시 이웃나라의 교세를 살펴 보건데 일본(日本)은, 현재 신자 총수 29만7천으로서 전인구의 240분지 1에 불과하며, 5년전에 비하여 겨우 6만5천명의 증가를 보았을 뿐이고, 대만(台灣)은 10년전 5천명에 불과하던 것이 이제 그 40배인 20만에 달한다고 한다. 세계적으로는 포교성적이 가장 우수한 곳이 「아프리카」이며 동양에서는 대만, 그다음이 한국의 순위일 것이다.
다시 우리 국내 포교상황에 눈을 돌이켜 보건데 신자의 수도 매년 늘어가지만 그 증가률이 근년에 와서 차츰 줄어가고 있다는 것을 주의하여야 한다. 1956년도 27,445명의 증가를 보았고 1957년도에는 42,765명의 증가, 1958년도에는 최고로서 69,091명의 증가, 1959년도에는 62,236명의 증가이며, 1960년, 즉 금년에는 겨우 34,729명의 증가를 보고 있을 뿐이다. 특히 작년 1년간의 증가를 갑자기 반으로 줄어든 것은 자유당 독재정권하에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우심하였음이 그 중요한 원인일 것이나 4·19혁명 이후 신앙의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냉담자의 회두 성적이 부진하고 새로운 영세 지원자의 수가 그다지 늘지 않고 있음은 그 원인이 전자에 있어서는 한번 냉담한 타성이 아직껏 영향을 미치는 것이요, 후자에 있어서는 정국(政局)의 호전(好轉)이 오히려 세속에 대한 관심을 더 크게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얼른 생각하기에 신앙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어 있는, 제2공화국 세대에서는 전보다 포교 성적이 좋을 것으로 낙관할지 모르지마는, 천주의 섭리는 의외로 평화시대보다는 수난과 역경의 때에 더 많다고 진실한 구도자(求道者)를 내는 수가 있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일본만 볼지라도 원자탄이 투하되어 수만의 생명을 순간에 잃고 항복한 직후에는 신앙의 진리를 찾는 자의 수는 증가일로에 있었으나 「싼프란시스코」강화조약 체결 이후에 국권이 회복되고 경제가 윤택해진 다음에는 전에 비하여 포교 성적이 매우 저하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 한국의 포교황금시대가 더 지속할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앞으로는 배전의 노력과 새 시대에 적응한 새로운 방법 없이는 과거와 같은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당국은 포교의 필요성을 신자들에게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한편 각종 포교용 책자를 발행하여 염가로 공급하고, 전문적인 전도사의 수를 늘이고 질(質)을 높여야 하며 종전과 같은 일대일의 개인적 전교일뿐 아니고 사회문화체나 직능단체를 통한 전체적인 전교로 방향을 돌림이 시급히 요청된다.
또한 신자들은 평신도 사도직의 중요성을 터득하여 환경이 허락하는 한에서 포교에 총동원될 것이로데, 현재에는 조직체를 통한 포교가 보다 효과적임을 유의하고 학생은 학생회, 일반 신자는 『레지오 마리에』 직장에서는 가톨릭적 노동단체나 조합 등의 기구(機構)를 통하여 조직적인 전교를 지향함이 보다 유효할 것이다.
끝으로 한가지 반성하고 싶은 것은 앞으로는 수에 보다는 질에 치중해야 하겠다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영세자의 수효가 그대로 구령하는 이의 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각 본당마다 거의 일치되는 슬픈 형상으로 믿어지는 바이지만 근자에 이르러 신입교우 중의 냉담하는 이의 수가 부쩍 늘어가는 형편이다. 이에는 전 시대의 정치적 이유도 있기야 하겠지마는 그도바는 입교 동기의 불순과 영세 준비의 부족과 특히 영세 후의 신앙지도에 불철저함이 큰 이유가 아닌가 한다. 일찍이 예수께서 <유다스>에게 하신 『차라리 이 세상에 아니 태어난 것만 같지 못하다』는 무서운 말씀을 듣는 이가 우리 한국 교우 중에는 한 사람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金 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