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오마」 성좌(聖座)에서는 지난 6월20일자로 이제까지 서울교구 내에서 감목대리구(監牧代理區)로서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원 신부들이 전교를 담당하여 교세(敎勢)를 확대시키면서 독립교구 설정(設定)을 착착 준비해오던 인천(仁川)지구(地區)를 대목(代牧=VICAR APOSTOLIC) 교구로 승격(昇格)시킴과 아울러 첫 감목(監牧)으로서 <윌리암.J 맥나흐톤>(羅吉模) 신부를 『뚜부르보 미누스(THUBURBO MINUS) 주교』라는 명의(名儀)를 부여하여 주교위(主敎位)에 서임(敍任)한다고 공포(公布)하였다.
회고(回顧)컨대 1831년 한국교구가 북경(北京)교구 관할에서 독립하여 설정된 후 네 차례의 혹독한 교난(敎難)을 겪고 120년만인 1911년에 대구(大邱)교구가 설정됨으로써 남방(南方)과 북방 두 교구로 교구가 증설되었던 것인데, 그 50주년이 되는 해에 금번 인천(仁川)교구의 설정을 보게되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이제 한국 가톨릭 교회는 남한(南韓)에서만 서울, 대구(慶州) 전주(全北) 광주(全南) 춘천(江原) 부산(慶南) 대전(忠南) 청주(忠北) 인천 등 9개의 교구를 갖는 것이며, 38선 이북(以北)의 원산(元山) 평양(平壤) 함흥(咸興) 연길(延吉) 등 침묵(沈默)의 4교구를 합하면 전국에 13개 교구가 되는 셈으로 한 도 단위로 한 교구의 비례(比例)가 되는 발전상인 것이다.
이번 새 교구의 중심지로서 교회 역사에 오르는 인천은 수도(首都)의 관문(關門)으로 복음의 씨는 일찍부터 뿌리를 박은 곳이며 서울 명동(明洞)본당이 설리보딘 이듬해인 1889년에 답동(畓洞)에 본당이 설립되었고 「메리놀」회에서 포교를 담당하기 전에 이미 답동 송림(松林)동, 부평(富平) 김포(金浦) 강화(江華) 등 5개 처에 본당이 있었으며 현재는 인천 도화동, 인천 북성동, 연평도(延坪島), 백영도(白翎島) 등 9개 처에 본당이 있고 또 황해(黃海)에 산재(散在)한 1백70여 개의 작은 섬에 사는 섬사람들을 포함한 65만에의 『해상전교』(海上傳敎)의 본거지가 되어왔다.
그 관할지역은 붉은 경비대(警備隊)가 주둔하고 있는 지점이 겨우 1마일 밖으로 접근되고 있는 위험한 곳도 있고, 먼 섬의 거리는 2백80마일이나 되는 곳도 있으며, 감목대리구가 된 이래 <요셉.코너스>(權) 신부와 <요셉.기본스>(盧) 신부가 감목대리의 직책을 맡아온 것이다.
현재 이 새 교구의 교세(敎勢)는 교육사업으로서 『박문(博文)여자중고등학교』가 있고 신자수는 2만5백50을 헤아린다는데 해마다 증가율이 상승일로(上昇一路)에 있는 발전상을 나타내고 있어 이는 이 지역사회의 특수사정을 충분히 참작하여 적절한 전교방법의 강구와 적극성을 띤 포교활동의 성과(成果)인 것이다. 이제 『교황대리교구』로 승격된 이 새 교구는 『지혜와 총명』으로 이름 높은 이시며 「메리놀」회 전체적으로서도 『가장 젊은 주교님』을 지도자로 뫼시게 되었으므로 앞날에 더욱 많은 업적을 기대할 수 있는 전도양양(前途洋洋)한 교구이다.
우리는 또한 이 기회에 현재 감목대리구로 되어 있는 제주도(濟州道)와 대구교구 내의 「왜관지구」(倭館地區) 「안동지구」(安東地區)도 빠른 시일 내에 교구로서 승격되기를 희원(希願)하는 것이며, 장차 서울특별시와 부산 및 대구 등 큰 소디는 그 도시만으로 하나의 교구가 될 수 있도록 교세가 확장(擴張)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무신론(無神論)적 유물사관(唯物史觀)에 입각한 인생관과 세계관으로 국가와 민족을 분열시키고 전쟁과 불안(不安)을 조장하고 있는 공산주의의 직접간접의 침략을 분쇄하는 길은 오직 종교적 신앙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 것이므로 참된 반공(反共) 구국(救國) 운동은 「가톨리시즘」의 전파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가톨릭신자들이 교회의 가르침을 사회의 각 부문에 침투시키고 각자의 직분과 영역(領域)에 합당한 사도직(使徒職) 활동으로써 전교에 총진군(總進軍) 해야 할 때라는 것을 호소한다.
<윌리암.J 맥나흐톤> 새 주교님께와 인천교구의 모든 성직자 및 교형자매들께 삼가 축하의 뜻을 보냄과 아울러 천주의 사업에 항상 풍성한 은총이 나리시기를 빌어 맞이 않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