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나라마다 역사는 「왕」(王)이 바꾸이고 그 「왕조」(王朝)가 바꾸이는 것이 그 줄거리다. 「수상」 「대통령」 「총통」 「총리」. 제도를 갈아 이름을 바꾸어도 그 지위의 권위가 「왕」임에는 바꾸임이 없다. 어진 왕이 있었는가 하면 모진 왕도 있었다. 수로 따지면 어진 왕이 몇 대(代)나 되었던가? 모진 「왕」의 경험은 우리 기억에 아직도 새롭지 않나?
▲ 3박사(博士)가 찾아가 보았던 <헤로데>는 모진 왕이었다. 자기 정권에 아부 않는 언론을 철저히 탄압하고자 <요안> 세자(洗者)의 목을 베인 그도 모진 왕이었다. 자기 겨레의 압박자 <비라도>와도 밤사이에 친선(親善)했던 그도 역시 모진 왕이었다. 왕권(權) 즉 정권을 잡으려고 날뛰는 우리 신변의 명사(名士)들 가운데 과연 어진이가 누구누구이신지?
▲ 어진 왕도 없지 않았으나 그가 한 일이 정치, 군사, 문화에 그쳤고 그 자신의 생명마저 그쳤다. 나라를 한때 평안케 했으나 백성의 마음마저 평안케는 못했다. 마음의 평안만이 인생의 행복인데도 우리 마음을 다스려 평안케 해주는 「왕」이 있을가? 있다! 난리에 쫓기어 피난다닐 때도 그 어지신 그리스도왕을 마음 안에 모셨을 때 우리 마음이 평안하지 않았던가?
▲ 천주를 「아비」라 부르사 「천주의 아들」이심을 밝히시고 스스로 「인자」(人子)이심을 선언하신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당신이 또한 왕이심을 긍정하셨다. 바로 그 다음날 이 세상의 왕이 백성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예사(例事)와 달리 이 어지신 왕께서는 당신 백성을 위하사 당신 생명을 희생하셨다. 그런 이래 그는 만세불변의 왕으로서 우리 앞에 또 안에 군림하신다.
▲ 그 왕권의 합법적 대행자인 공교사제(公敎司祭)들이 그 왕명(王命)을 받들어 그 왕의 백성을 위해 자기생명을 희생하고 있다. 현대의 모진 왕의 손이 닿는 곳곳마다. 백성들도 한가지로 자기 생명을 바치고 있다. 우리도 그 어지신 그리스도 왕의 사랑을 그와같이 보답하리라! 어찌 비극이 아니랴? 그러나 그 충성 없이 「현대」 안에 평안을 누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