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하(河)의 기적이란 말이있다. 그렇게 처절히 패망한 서부독일의 오늘의 경제부흥을 높이 찬양한 말이다. ▲『동포를 사랑하라. 불행한 자의 오늘을 도와주라』고 외치고 있는 <레피히> 신부의 행장을 별로 아는 이 없는 듯하다. 독일에 「전화 SOS」란 것이 있다. 전화 「SOS」를 불러서 자기의 딱한 사정을 전하면 요긴한 도움을 입을 수 있게 마련이다. 이 「전화 SOS」를 창안한 분이 바로 이 <레피히> 신부이다. ▲<레피히> 신부는 서품되자 곧 가두(街頭)연설에 나섰다. 소형자동차에 「스피커」를 달고 거리에 나섰을 때, 사람들은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헌데 어느듯 그의 연설은 주로 노동자간에 빗아한 충격을 주었다. 「구라파」에서도 전형적인 항구도시 「함부르그」에 그가 날아났을 때 과연 사람들은 긴장했다. 거리의 설교가들이 가끔 얻어터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찌된 일인지 그가 가는 곳마다 수천 군중이 모여들었다. 주로 노동자들이다. 저희들끼리 서로 『이 신부는 용감한 사나이다. 존경할 수 있는 친구이다. 연설 중 떠드는 놈은 목아지를 비틀겠다』고 자제(自制)하는 것이 아닌가. ▲<레피히> 신부는 『노동자란 별것 아니야 자본가가 못된게 노동자란 말이야…』 이렇게 내려치는 듯한 그의 연설은 노동자 빈민들을 고요히 귀기울이게 할 수 있는 매력을 가졌다. 그의 「제스츄어」는 불타는 영혼의 참 노동자의 벗인 것이 역연하고. ▲구두 옷 헌 자전거… 이런 것이 긴요한 사람에게, 설교보다는 이것을 먼저 구해다 주는 것이었다. 그는 부르짖고 있다. 『현대의 신부는 거리에서 공장으로 상점 사무소 병원으로 찾아가야 한다』라고. <레피히> 신부의 말은 독일 거리에 뿌려지는 씨(種)와 같은 것. 그 씨앗들이 오늘 곳곳에서 싹터 오르고 있는 것이다. 대중의 무관심(無關心) 그것은 비단 종교에서 뿐 아니다. 매사에 무관심에 더한 위험은 없다. 여기 그들을 뒤흔드는 것이 이 <레피히> 신부이다. 아니 수많은 <레피히> 신부들인 것이다. ▲「라인」 하(河)의 기적 운운할 때 서독의 경제부흥만을 계산하고 있는 것은 빙산일각(氷山一角)을 보고 있는 격이다. 「라인」의 기적은 거리에 뿌려진 씨앗, 영원한 씨앗이 싹튼 것이라고 한 그의 말을 반추해 볼 만 하다. 한강의 기적을 바라는 우리 모두가 뉘우처 볼 말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