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를 맞추어 주는 질서는 정의(正義)다. 정의는 평화를 낳고 부정의는 분쟁(紛爭)을 낳는다. 그래서 법(法)은 국민에게 정의롭게 살라고 명령하고 부정을 금하고, 정의에 맞추어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분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사람 사이는 정의만으로 만족되는 것이 아니다. 각자(各自)에게 각자의 것을 가지게 함으로써 분쟁이 해결되고 평화가 오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은 그것만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행복은 인정사회(人情社會)에 사는 백성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이 사회에서는 이미 그 질서가 다르다. 각자의 것은 각자가 가지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제 것을 남에게 주는 질서에서 벗어난 사랑의 덕(德) 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제 것을 주며 만족하고 희생 속에 행복을 느끼며 사는 인정사회로서 가장 자연적인 것이 가정(家庭)이다. 모든 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희생하며 행복을 누리는 인생의 보금자리가 되어야 한다. 이 둥주리 안에서 털이나고 나래가 나서 하늘 높이 나르며 인류 평화와 행복의 씨를 뿌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세상에는 평화를 잃은 가정이 적지 않다. 이러한 가정에서 범죄자(犯罪者)와 평화교란자가 배출되어 국가의 안녕질서(安寧秩序)를 파괴하며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우범소년(虞犯少年)에서 자랐고 가정불화가 매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범죄동기를 만들어 주고 있지 않는가.
가정분규의 해결에는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가정의 불화가 미치는 영향이 광범위하고 중대할 뿐 아니라 위에서 말한 가정사회의 특수성에 비추워 그 해결방법도 또한 특별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혁명정부에서는 가정재판소 설치에 관한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구라파(歐羅巴)에서는 많은 국가들이 일찍부터 특수한 가정문제에 대한 특별 관할(管轄)을 규정하여 왔고 불법계(佛法系)에서는 이러한 관할권을 가진 심판관을 <평화의 판사(Juge de paix)>라고 부르고 있다. 가까운 이웃나라인 일본만 하드라도 지난 1947년에 이미 가사심판법(家事審判法)이라는 특별법을 공포하여 미성년자(未成年者) 및 금치산자(禁治産者)에 대한 후견(後見) 이혼(離婚)에 있어서의 재산분여(分與)와 자녀의 감호자(監護者) 결정, 유산(遺産)분할, 친족관의 부양(扶養), 제구(祭具) 승계자의 결정 등에 관하여 가정심판소(1949년에 가정재판소로 개칭)가 관할키로 하는 한편 심판관은 참고될 의견을 줄 수 있는 참여원(參與員)을 심판에 입회(立會)시켜 그의 견을 들은 후에 결정하게 하고 또한 조정위원회(調停委員會)라는 것을 두어 심판에 앞서 조정위원으로 하여금 분규를 일으킨 당사자 쌍방을 설득시켜 상호합의(相互合意)에 의한 평화적 해결에 노력하도록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만 20세 미만인 소년이 죄를 범하거나, 정당한 이유도 없이 집에 붙어있지 아니하거나, 보호자의 정당한 감독을 받지 아니하거나, 앞으로 범죄할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가정재판소의 심판에 부쳐 적절한 보안처분(保安處分)을 함으로써 가정의 평화 유지와 평화교란자 및 그 위험에 있는 자의 교정(矯正)에 노력하고 있다.
가정분규는 본질적으로 보아 정의의 상실(喪失)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사랑의 상실에서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법이 상실된 사랑을 회복시킬 힘을 가지고 있느냐는 문제가 일어난다. 확실히 사랑은 종교와 도덕의 분야(分野)에 속한다. 그러나 입법정책(立法政策)면의 묘(妙)를 다한 법의 역할도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조정(調停) 중재(仲裁)뿐만 아니라 심판수속에 있어서도 재산상(財産上)의 분규와 다른 그 특수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고려하면 가정평화의 파괴를 방지하고 상실된 평화를 회복하는데 있어서 경시(輕視)할 수 없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건전한 가정의 육성과 평화와 행복의 증진(增進)은 종교와 교육의 적극적인 교도에 의존(依存)하는 바가 절대(絶大)하다는 것을 아울러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