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안> 23세 성하께서는 급변(急變)했고 또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복잡미묘한 사회관계(社會關係) 및 사회문제에 저 유명한 <레오> 13세의 사회회칙(社會回勅) 「레룸·노바룸」을 재확인(再確認)하며 또한 더욱 널리 선양(宣揚)하는 새 사회회칙을 반포(頒布)하였다.
<레오> 13세의 「레룸·노바룸」은 1891년 5월15일에 반포되었으므로 금년은 그 70주년에 해당된다. 이를 기념하는 새 회칙이 반포되리라는 소식은 이미 작년말부터 활발히 보도된 바 있었으나 주요국어 등의 번역과정과 전세계 주교들 앞으로 시간적으로 동시에 전달될 것을 원하신 성하의 뜻을 받들어 지난 7월14일 공식 반포에 이르렀다.
새 회칙명(回勅名)은 『마뗄 엘 마치스뜨라』 즉 "어머니와 교사"이다.
새 회칙은 「레룸·노바룸」을 단순히 재확인 한 것은 아니다. 「레룸·노바룸」은 영원히 그 빛을 잃지 않을 사회교의(社會敎義)인 것을 강조함과 더불어 <레오> 13세 이후의 위대한 각 교황들의 가르침을 또한 굳게 다짐하고 이 세대(世代)에 야기되고 있는 비인간화(非人間化), 사회의 기계화 등을 사실로서 지적하고 있다. 『가장 치명적으로 전형화(典型化)된 현대의 오(誤)는 오직 그 지속(持續)의 바탕이신 천주에 선행(先行)하여 효과적인 세속질서(秩序)를 재설정하려는 허구(虛構)에 있으니 만일 인류의 업적이 천주대전에 쇠멸되지 않으려 할진데 이에 제지(制止)를 가해야 한다』 (試_)이렇게 경고했다.
극도로 물질화된 현대 여기 초자연(超自然)과 그 영원한 물질은 거인(巨人)이 되고 정신은 마치 꼭뚜각시처럼 위축해버리겠다는 <레오> 13세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 한 번, 크게 부르짖을 것은 무엇인가 가장 근본적인 요구는 뭉서인가, 현대는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가장 기본적인 그것은? 그것은 도덕의 회복이요 보속과 희생과 참으로 본연(本然)의 그리스도교 사상을 재신(再新)하는 길밖에 없다.
본연의 그리스도교 정신에로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하였다. 인간의 머리와 마음을 엮어놓을 참 그리스챤의 사랑, 그 사랑의 실천이 곧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이런 말씀이 우리 귓전에 마치 바람처럼 스쳐 가기만 하고 뼈저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이를 경고해야 한다. 성하의 말씀은 각자와 사회단체에 향하여 그리스도교적 사회관(社會觀)을 확립하되 그 본자세(本姿勢)로 돌아설 것을 긴급히 명하신 것이다. 그 본자세란 무엇인가? 그것은 형제애(兄弟愛)라고 하셨다. 형제는 서로 보호자이다. 이에 참으로 느껴 생각하는 바 있다면 서로 한덩이로 살 수 있겠고 그들이 살고 있는 거기서 보다 나은 영육의 생활을 영위(營爲)해갈 수 있다. 이것은 문명 사회의 인류적 의무인 것이다. 성하의 말씀을 그대로 옮기면 『자연과 초자연 질서의 양쪽에 있어 인류의 영성적 완성을 조장(助長)하고 앙양할 수 있다』
새 회칙의 전문(全文)은 영역(英譯)으로 2만5천어에 달한다. 이의 조속한 우리말 번역을 촉구한다. 여기 한 가지 덧붙일 것은 단시일에 번역되는 것을 능으로 삼지 말고 정확하며 반듯한 결정판(決定版)이 꾸며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교회 울타리 밖으로도 잘 보급되어야 할 줄 안다. 책의 편찬도 잘되어 인용(引用)에 편한 것이면 더욱 좋겠다.
우선 그 내용을 간략히 나열하면,
○산아제한(産兒制限)에 대한 교회의 단죄(斷罪)를 엄격히 재천명 했다.
○각급(各級) 노동자들이 사업에 있어 더 행동적이고 책임 있는 발언을 할 수 있도록 호소하였다.
○정치적 폭군에 대항하여 사유재산과 사적(私的) 선도권(先導權)이 완전히 보호되도록 강력히 성명하였다.
○사회화(社會化)의 이점(利點)을 수락(受諾)한 것이다. 이것은 사회계획 행동 등의 중개(仲介) 보조(補助)를 의미한 것으로 어느 사회주의적 전제(專制) 또는 통계주의와는 명백히 구분된다. 무슨 간섭정치(干涉政治), 집단주의와도 전혀 구별된다.
○세계 농업(農業)의 위기에 대한 상세한 의론(議論)을 했다.
이외에 주목할 것은 국제관계에 언급한 것이다. 성하께서는 『현대의 가장 곤란한 문제는 경제적으로 앞선자와 발전도 상에 있는 정치사회간의 관게인 듯 하다』고 하고 『전인류를 결속하는 연대책임과 저들이 한 집안이 되게 하라』고 했다.
그 구체적인 경고로서는 효과있게 쓸 수 있는 과잉생산 물자를 파괴하거나 버린다는 것은 저읭와사랑에 배반되는 행위이니 마땅히 필요한 곳을 원조할 것이다. 부(富)한 자는 빈자를 반드시 도와야 하며 빈자는 물론 자조(自助)의 책임을 스스로 저야 한다.
경제재건의 부담은 사적(私的) 단체에 의해 수해오디어야 한다. 그렇게 사회질서가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국(公的)은 여기 비행동적으로 방관해서는 안 된다. 농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강조한 것은 앞서 말한 원칙과 같다.
이 새 회칙을 3대 사회회칙의 하나로 보고 있다. 즉 「레룸·노바룸」 「과드라제시모·안노」 그리고 「마뗄 엘 마지스뜨라」이다.
앞으로 이 새 회칙에 관한 많은 해설이 나올 줄 안다. 그때마다 이를 보도하기에 지면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내년으로 임박한 대공의회를 앞두고 교회가 다시 한 번 세계적인 곧 인류적인 광버을 수행하려고 하고 있다. 또 국가간의 정세는 그 어느때보다 긴박한 감이 있고 전쟁! 평화!의 막다른 지경에 다다르고 있다.
이럴 때에 새 사회회칙이 반포된 것은 중대한 의의를 가지고 있음을 더 말할 것 없다. 다만 그 내용을 읽혀 알고 곧 우리의 진정한 사회관을 밖으로 선양할 수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