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두 차례씩 정부를 바꾸는 혁명을 치르고 이제 감격의 8.15 광복적을 맞이했다.
사실 해방 16년간은 과거 수백년의 역사에서 이를 주름잡는다 해도 이만치 격심한 기복을 볼 수는 없겠다. 그간에 겪고 또 느끼고 해온 것들이 곧 산증인(證人)으로서 변호하고 또 폭로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우리 안에 실현(實現)해주고 있다. 그런 기복(起伏)이 반드시 일정한 방향(方向)을 지녔느냐 하는 것은 후일의 심판(歷史的)을 받아야 하겠거니와 지금 곧 서슴치 않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흔히 쉽게 말하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지극히 평이(平易)한 진리이다. 모든 구악(舊惡)의 근원은 오직 양심의 치완(馳緩)에서 온 것이 아니었던가? 불의(不義)의 수단으로 부당한 재산을 축재하고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사리(事理)에 임하기를 마치 능(能) 한자의 솜씨를 보여주듯 하고 하등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무리들이 도처에서 조량했었다. 정계(政界)는 어떠했던가? 일부 몰지각(沒知覺)한 정객들은 정당을 마치 이권사업의 앞잡이로 삼아왔다. 민주사회는 여론을 존중한다고 한다. 그 여론은 같은 의견(意見)의 혹은 비슷한 의견의 집합(集合)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를 규합하여 정치적으로 반영한다는 것은 건전한 민주방식인 것이다. 그런데 그같은 의미(意義)의 말하자면 이념(理念)을 중심으로한 조직적이거나 그 활동이 아니고 그것을 곧 이권(利權)의 종(從者)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것이 지나처서는 심한 당파의 함정을 장만케되어 이것은 한낱 시장(市場)의 조합(組合)만도 못한 인상을 주었다. 관대한 타협이나 「파인·풀레이」를 완전히 망각했었다. 저 이조(李朝) 종말에 임박한 사색당쟁(四色黨爭)을 그대로 재연(再演)했던 것이다.
우리의 해방은 이런 전근대적(前近代的) 불민한 사고방식을 깨끗이 떨어버리고 박차고 나서서 참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새 나라를 지향해 가는데만 한 뜻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결론을 먼저 말하면 우리는 다시 한 번 8.15의 감격 즉 그 순수한 민족적 양심에로 돌아서야겠다는 것이다. 혹은 그것을 회복할 수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이게 곧 오직 한 과제이다. 지금 전국민이 호응하고 있는 구악(舊惡)의 소탕운동을 제도(制度)와 인력(人力)의 양면에 걸처 정의와 단결과 사랑을 그 기초로 삼지 않고서는 내면적인 개혁(改革)을 해볼 수는 없다.
지금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깐」공의회를 앞두고 모든 신자들의 치열한 기도행위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공의회는 또 하나의 외연적(外延的) 큰 목표로 교회의 재일치를 표방하고 있다. 교회재일치의 기초는 이는 천주의 뜻이며 천주 친히 인간이 되어 구속사업을 완수함과 동시에 한 천주 아래 한 신앙, 한 성사로서 한 우리 안에 정신적인 세계통합을 이룩하게 마련하였다. 오늘 갈려진 형제들의 분립(分立)은 또 하나의 세기적(世紀的)인 비극인 것이다. 이 비원(悲願)에 가로놓인 사실은 앞서 말한 성모성심을 뭇 「프로테스탄트」에서 긍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 점은 성하 친히 언급했음 같이 가장 큰 난관(難關)이요 또 그렇기 때문에 그 난관을 한 번은 통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갈려진 형제를 부르는 이번 공의회의 뜻은 그 영성적 근원이 그리스도의 구속성혈에 있기 때문에 이를 옳게 또 만족히 알아듣는다면 참으로 대의(大義)에 서서 이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두 개의 서로 상위(相違)한 것이면서 분리(分離)된 것으로 볼 수 없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 하나는 다시는 이그러질 수 없는 완벽의 민주체제(體制)를 이룩하자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서는 정의와 단결과 사랑을 기초로 하는 각자의 사무치는 뉘우침으로 각 방면에서 개인 및 국민적인 「모랄」을 확립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챤·유니티」를 끊임 없이 바라는 이상(理想)으로 삼고 이로써 「로오마」의 소리와 일치해 가도록 하는 것이다.
얼마 전 「파띠마」를 방문한 「뉴·욕」의 <풀튼.쉰>보좌 주교에게 기자들은 「파띠마」의 제3의 비밀에 대한 논평을 요구했더니 「파띠마」의 멧세지는 아직도 유효한 것이다 하고 뉘우치며 보속하라는 성모님의 말씀이다. 실천 됐다고 생각느냐는 반문(反問)을 했다고 한다.
성모께 바치는 정성을 새로 불사르게 하자. 광복절과 이 큰 첨례를 동시에 맞이하는 우리네 가슴에 파고드는 감개는 칙량할 수 없을 만하다. 6.25 공산침략 당시에 우리는 성모님의 전구(電球)하심으로 저 물밀듯 닥치는 공산군을 처 눌러주십사고 기구했다. 그와같은 신심으로 우리 안에 뿌리 박힌 구악(舊惡)을 물리쳐 주시기를 간구할 것이다. 이렇게 밝혀진 우리의(엘리떼) 양심은 필경 적폐적악(積弊積惡)을 일소하는 제국민대열(隊列)의 빛이 될 수 있겠다.
마침 사필귀정(事必歸正) 즉 악과(惡果)를 거두면서 한편 실망하면서도 정의를 부르짖고 있는 국민적 뉘우침이 높을 때이다. 이 때에 국민적인 윤리(倫理)의 횝고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줄 수 있겠다.
우리의 8.15는 또한 몽소승천(蒙召昇天)하신 성모님을 공경하는 기념일이다. 순교 선혈들이 성모님께 봉헌(奉獻)한 이 강토가 이날 해방을 얻게 된 것은 우연으로 돌릴 수 없으리라. 1950년 11월1일 당시의 <비오> 11세께서는 교황령 「무니피체띠씨무스·데우스」를 발하여 『무원죄(無原罪)의 성모님이시요 종생(終生) 동정이신 성 마리아는 지상생활을 끝맺고 후에 육신과 영혼 함께 천국의 광영(光榮)에 영접되어 드셨다』는 가르침을 교리(敎理)로서 선포(宣布)하였다. 여기서 읽을 수 있음같이 무원죄와 영혼 육신의 피승천을 결부시켜 이 교리의 기초로 삼고 있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