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오직 한 분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탄생하신 이, 또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서 탄생하신 이가 있다.
이 세상에서 오직 한 분 그분의 탄생을 세계년호(年號)의 시작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가 있다.
이 세상에서 오직 한 분 그이의 탄생장소와 때 그리고 그분 생애의 모든 일이 수백년 수천년전부터 미리 예언(豫言)되어 있는 분이 있다.
이 세상에서 오직 한 분 당신 자신을 스스로 우주의 창조주(創造主)라고 말씀하신 이가 있다.
그이는 우리들이 천주의 아들 딸이 되게 하기 위해서 천주로서 사람이 되셨고 우리들이 강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약한 아기가 되셨다.
그이는 우리들를 죄악의 노예상태에서 속량하시기 위해 죄인처럼 되셨고 참된 위대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적은 어린이가 되시어 세상에 오셨다.
우리를 천부(天父)의 집으로 달려가기 위해서 천주의 아들이 이국(異國) 땅을 밟으신 것이며 천국의 좌석을 우리들에게 주기 위해서 이세상에서는 몸둘 곳도 없는 외양간 우막에서 탄생하셨다.
오늘 전세계는 그분의 역사적 탄생을 기념하는데 그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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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은 『많은 사람의 망함도 되고 흥함도 되실 것이오 또한 거스림의 바탕이 되시리라』(루까 2,34)고 <시메온>이 예언할 바와 같이 어린시절부터 한편으로는 증오(憎惡)와 거스림의 대상이 되었고 2천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러하여 그의 원수진영은 바람따라 정처없이 떠도는 경기구(輕氣球)에 올라앉아 천체(天體)를 탐험하려고 꿈꾸는 사이비(似而非) 학자와 사상가들을 동원시켜 반그리스도운동을 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옛날 <예수>께서 「비리버세사리아」에서 당신 자제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더뇨?』하시고 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뇨?』고 질문하셨을 때 『스승은 그리스도시요 생활하신 천주의 성자이십니다』고 대답한 <시몬 베드루>의 신앙고백을 오늘의 그리스도신자에게도 요구하시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신비는 다만 그가 천주시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천주시요 동시에 사람이시라는 점에 있는 것이니 『이에 말씀이 강생하여 사람이 되사 우리사이에 거처하신지라 우리가 그 영광을 보매 곧 성부의 독생성자의 당연한 영광이요 또 성총과 진리가 충만하시니라』(요왕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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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상계(思想界)에 있어 마지막으로 나타난 반그리스도론자 <니체>는 『예수는 인류를 무기력(無氣力)하게 했다. 죄는 아름답다. 강폭(强暴)은 훌륭한 것이며 삶을 긍정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떠들었고 반그리스도의 진영은 <그리스도>를 제맘대로 처치해버리려고 했지만 <그리스도>의 위치는 그누구도 차지하지 못하였다. <세살>은 그 생전 <예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화제(話題)에 올랐고 <프라톤>은 <그리스도>보다 몇배나 학문을 가르쳤지만 오늘날 「로오마」의 지배자가 「그레시아」의 철학자에 대해서 말하며 충성을 바치고저 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그와는 반대로 <그리스도>는 지금도 아직 우리들 가운데 당신교회를 통하여 살고있으며 세상의 종말(終末)까지 지구상에 엄연히 머물러 계실 것이며 <그리스도>는 실로 인간생활에 있어 시작이요 마침으는서 만약 우리들의 인간의 생활을 그리고 우리들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려고 새각한다면 아무리 해도 <그리스도>에 의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현대처럼 <그리스도>에게서 멀리 떠난 시대도 없지만 한편 현대처럼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시대도 이제까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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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이 다 즐거워할 바 큰기쁨을 너희게 고한다) 『루가 2,10)고 말한 천신들은 『지극히 높은데서는 천주께 영광이오. 땅에서는 마음이 좋은 사람들에게 평화함이로다』(루가2,14)라고 노래하였다.
참된 기쁨과 평화는 영원(永遠)에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현대처럼 영원에 연계되어 있는 기쁨을 잃어버린 시대는 없고 현대처럼 평화를 부르짖고 있는 시대도 없다. 현대인이 이렇게 영원에 연계된 기쁨과 평화를 잃어버리게 된 중요한 원인은 참된 기쁨과 평화의 원천(源泉)을 잊어버리고 물질과 황금이라는 우상(偶像)을 받들고 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현대 사람들은 물질문명의 진보 가운데서 기쁨을 구하고 마음을 빼앗기고 있어 참된 기쁨과 영원에 연계된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만큼 경제(經濟)가 중시되고 과학(科學)이 놀라울 만큼 발달하고 정치(政治) 기술이 진보된 시대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의 진보가 과연 얼마만큼이나 인간의 기쁨을 더해주었으며 깊게해주었던가? 오히려 이러한 진보의 이름으로 인간은 그 본질(本質)까지도 빼앗겨가고 있지는 아니한가? 본질마저 빼앗기고 있다는 말은 인간 가운데 있는 기쁨과 관련되어 있는 원천을 빼앗김을 뜻하는 것이니 우리는 참된 기쁨과 오락(娛樂)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현대에는 거짓기쁨, 영원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허망한 상품화(商品化)된 기쁨을 매매(賣買)하는 거대한 조직들이 있어 대중은 기획화(企劃化)된 속되고 악한 기쁨을 배급받고 그를 앞에 두고 울며 웃는 것이라 해도 과한 말은 아닐 것이다.
예언자 <이사이야>가 『너희는 기뻐하라』고 하였다. 참된 기쁨은 구원(救援)의 희망, 영원에 견결되는 것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이세상에 나타나신 천주의 생애(生涯)!!
현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다시 인식함으로써 기쁨과 평화의 원천을 찾아야 할 것이니 새로운 생명은 여기서부터 솟아오를 것이며 우리의 시대(時代), 우리의 문명(文明), 우리의 생활(生活)은 새로운 가치(價値)를 발견할 것이다. 기쁨의 샘(泉)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 안에 있다. 그리고 인간 안에 있는 기쁨의 샘이란 은총(恩寵)의 체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쁨인 것이다.
불안(不安)과 초려(焦慮) 중에 있는 현대사회에 기쁘을 초래케 할 입장에 있는 자는 영원한 기쁨의 샘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 신자일 것이니 그리스도신자의 기쁨의 찬미가 보다 좋은 세계를 찾아 고민하고 있는 인류에게 희망과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