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을 뭐라고 번역해야 옳겠읍니까?』 그 어른은 얼른 사진을 펼쳐보시더니 『하!』 가벼히 실망하시면서 사전을 덮으신다. 이런 등속의 대화가 오가는 동안 『그런 어려운 것보다는 아주 쉬운 것이 교우들에게 더 요긴하지 않겠오?』 『그러나 외인층에는 처음부터 높은 차원의 신앙생활을 갈망하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또 얼른 이해하시더니 수긍하시면서 『그러면 이 책을 참고하시오.』 「10자가의 요왕」 성인의 「갈멜산 등반」 「영혼의 암야」의 일역을 꺼내 주셨다. 『참! 미칩니다! 미칩니다! 결국 시로 밖에는 표현이 안 되는 경지입니다.』라고 감탄하시면서.
○…또 한분 다른 어른의 경우 『불교의 중은 암만해도 회두가 안돼요. 우리가 불교를 알아야 옳다 그르다 설명을 하지요. 젊은 사람들도 불교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알아요. 첫째 한문을 알아야 우리가 불경을 보지요. 프로테스탄트의 관계는 알지마는 불교관게는 배웠어야지.』 솔직하신 말씀이다. 『미구에 「동서의 피안」이 나오면 갖다 들이겠읍니다. 불교도가 보아도 회두할만한 책입니다.』 『아이고! 좋고 말고!』
○…먼저번의 어른은 학구(學究)이시며 전교를 지휘하시는 「전주」의 <한>주교님이시고 나중번의 어른은 학구가 아니시나 민족문화의 제1선에서 직접으로 전교하시는 「경주」의 <이>신부님이시다. 젊으신 전자의 번개같은 추리와 늙으신 후자의 심각한 체험이 돌아갈 곳은 그 민족의 고유한 전통문화에 대한 정당하고 충분한 이해가 그 사회의 지도층 지성층 전교에 앞선다는 객관적인 하나의 사실이다.
○…명말(明末)의 <마테오 리치> 신부님과 그의 동반들이 청초(淸初)에 가졌던 심적(心的)태도와 외적(外的) 방법을 들추기도 새삼스러우나 그들은 「서양산」(産)의 「동양인」이었기 때문에 동양문화의 지성을 능히 사로잡을 수가 있었다.
초점(焦點)을 좁히면 「외국산 본당인」!
○…대신학교의 현관에 <다산>은 고사하고 <추사>의 글씨 하나가 아니걸린 것을 허전해 못견디어 교만한자의 분심일까? 신문 교우(Convert)의 잡념일까? 「페단트」의 아는 채일까?
김 프란치스꼬 익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