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입니다. 성모님이 꿇어 두손으로 예수아기를 받아, 우리에게 또 주십니다. 『아나, 받아라, 이 사람을!』 영혼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고 육체도 아니고 오직, 사람입니다.
▲ 「아기」는 무심코 잠들고 있읍니다. 아기는 그 용모와 피부의 빛갈을 가리지 않고 아기이므로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누구나 아기를 보면 입이 벌어지며 두 손을 펴들고 오라고 합니다. 받겠다는 것입니다.
▲ 『아나, 받아라, 이 사람을!』 아기는 눈을 떴읍니다. 사방을 둘러봅니다. 소와 말과 양들이 응시하고 있읍니다. 면도를 해보지 못한 목동들의 수염은 가지가 벌었읍니다. 아기는 놀라 울기 시작합니다. 『이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는 아기를 어떻게 받습니까?』 뒤찮고 고통스러운 일은 싫어합니다. 『이 아기는 수녀원 고아원에나 주지!』
▲ 사람을 주십시요. 받겠읍니다. 우는 사람, 귀찮은 사람, 고통스러운 사람, 다 받겠읍니다. 앞으로는 면도도 말쑥하게 하고 웃는 낯으로 꿇어 두손을 펴들고 받겠읍니다. 『이리주십시요. 예수 아기는 내가 맡아 뫼시겠읍니다』
▲ 사람을 주십시요. 서양사람도 좋고 미국 사람도 좋고, 저 멀리 아프리카 배꼽을 항시 내놓은 사람도 좋습니다 가난한 사람, 우는 사람, 굶주린 사람도, 또 신품을 받았거나, 안받았거나, 허원을 했거나 안했거나 교우도 열교인도 아랍교인들 어찌 사람이 아니겠읍니까? 『받고말고요!』
▲ 우리는 물질을 너무 많이 받고 또 너무 좋아했고 또 망덕이 너무 많았읍니다. 그뿐입니까. 사람을 떠난 도깨비 같은 정신은 얼마나 많이 받았읍니까? 정신이 모자라서 요꼬라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주십시요. 「밀가루」는 누룩이 많은 나라에 해를 줄 뿐 아니라 너무 여러가지로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한국의 피난민과 병자와 고아와 문둥이를 위하여 모는 「딸라」는 <린커언>의 위력을 자랑할까 두렵습니다.
▲ 우리나라 초대 교회는 「밀가루」도 「딸라」도 없었읍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받아 오늘의 교회의 터전을 튼튼하게 닦아놓았읍니다. 밀가루를 주시는 바로 당신이 오십시요. 당신 그 사람을 주십시요. 대재를 지키신 당신이 오십시요. 당신 그 사람이 오십시요. 우리는 「사람」을 받아야 하겠읍니다. 당신네들도 사람을 받으십시요.(石海齊主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