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자의 사도직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교회 당국과 평신자, 성직자와 평신자와의 관계 및 가톨릭 악숀에 있어서 평신자가 자기 분야(分野)에 있어서 감당할 바를 분명히 하고 자기 사명을 정확히 수행해 가야하겠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 점을 밝히기 위해서 과거 적어도 40년간을 두고 사도직이 논의되어 왔었다. 이를 직접으로 취급한 것을 「평신자의 신학」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평신자가 교회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位置)에 대한 큰 걱정을 보게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중요한 일은 평신자의 직분(職分)을 분명히 그리고 정확히 인식(認識)하는 일이다. 이의 신학상 논의는 쉽지 않다. 그만큼 중대한 것임은 더 말할 것 없다.
평신자의 교회 안에서의 지위가 표준화되고 혹은 개선(改善)되어야 한다는 소리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이같은 소리는 모다 평신자 사도직의 발전(發展)에서 비롯한 것이다. 사회 일반의 발전과 대처(對處)해 가야할 교회 안에서의 평신자의 활동은 실로 다양성(多樣性)을 띠게 되었다. 물론 그런 일은 성직자와의 관련성 내지 협동성을 떠나서는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상호 보충성(補充性)으로 말하면 지금 어느 표준 또는 정의(定義)를 내릴 수는 없다. 왜냐면 사제의 사명은 따로 장만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제의 사명은 그 성질상 본질적인 것이고 평신자와는 대치(對置)할 수 없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한말로 사제는 제2의 그리스도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평신자의 교회 안에서의 그 위치(位置) 즉 자기 사명에의 자각 및 평신자 사도직의 발전과 더불어 그 진폭이 넓어졌다는 것을 말하고저 할 뿐이다.
그 사정을 특수화(特殊化)된 가톨릭 악숀 분야에서 살펴볼 수 있다.
▲=국제발전협회, 이 운동은 가장 참신한 평신자 조직으로 훈련된 평신자 전문가 기술자를 전교지방에 파견하여 그곳의 국가적 발전을 돕고있다. 1957년 5월1일에 창립되었으며, 그 회원 한 분은 사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일도 있다.
▲=그리스도교 가정운동, 1947년 미국 「시카고」에서 조직되었으며 가정생활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끌고 가정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행동을 번저가게 하자는 것이다. 가정 단위로 회원을 얻어 5만 이상이나 확보하게 되었다. 지금은 미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가정을 사도직의 단위로 삼은 것이다.
▲=「그레일」운동, 이 운동은 화란에서 시작되었다. 젊은 여성들이 그 결혼생활 또는 동정생활 가운데 특별히 전교지방 및 비가톨릭 속에 파고 들어가서 지도자로서의 사도직을 수행한다. 회원이 되기에는 특수한 훈련을 받는데 그 훈련의 기간을 주말 또는 하기휴가를 이용하여 과정을 채우게 마련이다. 지금 「아프리카」와 남태평양 「라띤 아메리카」 등지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다.
▲=국제가톨릭협조회, 이 회는 구라파에서 창설되었다. 저 유명한 <빈센트.렙배> 신부의 정빈, 정결, 순명을 허원하고 전교지방에서 본방인 평신자를 교육하며 돕는 일을 한다. 회원은 회와 그 지방 주교에게 순명하고 일정한 수도복을 착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서울과 대구에서도 활약하고 있어 단시일에 큰 성과를 올리고 있는 중이다.
▲레지오·마리에,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평신자 조직이다. 1921년 「아이란드」 「더브린」에서 창설되었다. 회원은 규칙을 준수하며 순수한 영성적 모임을 지향하는 동시에 전교활동과 특별히 냉담자를 재개종 시키는데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 있어 평신자 조직으로서는 단시일에 최대의 것이 되었다.
▲=JOC 청년노동자회, 이 역시 한국에서도 놀랄만한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1925년 「베르기」에서 창설되어 세계적으로 발전했다. 그 목적은 젊은 근로자를 훈련하여 제생활을 그리스도화 하고 제일과 환경을 그리고 동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것이다. 대개 18세에서 30세까지의 12명 정도의 「그룹」을 조직하고 「그룹」간을 연결하고 교구적으로 전국적으로 다시 국제적으로 연결한 강력한 노동청년의 조직이다.
이밖에 교사, 변호사, 의사 등 수많은 직업별 조직을 다 열거하지 못한다.
또 이런 평신자의 조직은 「유네스코」가 자진해 와서 자주 공동주최의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얼마나 착실히 발전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모든 평신자 사도직 활동이 조직적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직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때는 아닌상 싶다. 그런 조직도 한 지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교구적으로 그리고 전국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게 곧 현대가 요구하는 평신자 사도직의 테크닉이라 하겠다.
그런데 우리네 본당 사정을 보면 겨우 학생들의 조직이 있을뿐 그밖의 평신자 조직으로는 지도 신부가 나서서 지도하는 「레지오·마리에」, JOC가 활발한 반면에 다른 활동이 별반 없다. 「레지오·마리에」나 JOC가 활발하기 때문에 다른 조직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면 좀 극단적인 표현이 될까, 어쨌든 그것만이 평신자 사도직의 전부인 듯한 인상을 주게될 우려마저 없지 않는 것이다.
과거 본당 청년회 조직이 우수하고 그 활동이 눈부시던 곳도 여러 명목의 단체가 생기면서 흐지부지된 곳도 없지 않다. 청년회로 말하면 상당한 전통을 가진 단체이다. 오래된 본당일수록 자랑할만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청년들이 힘을 모으고 교회 행사에는 발 벗고 나서서 항상 신자들의 앞장을 서왔던 것인데 까닭없이 그 바탕을 허물어 버린 데가 있다면 이 얼마나 세기적 명령인 평신자 사도직 이상(理想)과 역행하는 것이겠는가. 다른 명목의 「그룹」 회원을 통합한 청년회가 다시 살아났으면 한다.
지도적 위치에 있는 분으로 어느 「그룹」 활동에 속하기에 틈으로 바뿌고 또 어색한 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분들이 「가톨릭·로타리」같은 것을 조직하고 그런 위치에서 또한 평신자 사도직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가.
쉽게 말하면 유(類)는 유(類)대로 모아서 여러 「그룹」을 만들고 활발한 「그룹」활동을 하면서 그것이 서로 연결되는 길을 찾고 있는 것이 현대적 특색인 것이다. 어떻든 조직을 벗어나지 말고 힘을 모을 수 있는 방도를 얻어야 한다. 우리의 실정은 아직도 전인구의 2% 미달인 가톨릭 인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인데 그것마저 조직적인 일을 할 수 없다면 전도를 낙관할 수 없는 것이다.
평신자 사도직의 대의(大義)를 내걸고 본당 단위의 조직에 힘쓰자. 한 사람의 갸륵한 행동보다 한 단체의 그것이 더 큰 힘을 낼 것은 계산상으로도 뻔한 것이다.
평신자 사도직은 평신자 각자가 자기 직분(職分)에서 자기하는 일을 성화하고 그것을 이웃에 미치게 하는 것이라 하겠이니 그런 행동을 일으킬만한 조직을 벌리지 않고 성과를 걷우지 못하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