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 직업삼아 하는 일에 쉬운 일은 없는 줄 안다. 씨름군도 상대가 만만치 않았을 때는 전신의 근육을 동원하고서도 진땀을 빼는 법이다. 그리고서도 지는 수가 있다. 붓대 한자루에 직업의 이름을 걸고 거기다 적지 않은 식구를 매달았을 때, 더욱 얼마나 무겁지 않을 수 있으랴. ▲ 몇일전(1월 14일) 고(故) 벨라도 김용태 가톨릭시보 동인(同人)의 초기(初忌) 연미사를 봉헌하고 몇몇지우들이 모여서 지극히 초라한 추념을 지냈다. 참으로 초라한 그것이 있다. ▲ 사람들은 제각기 먹고 살기에 오직 전심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할 타고난 의무마저 있다. 허나 사람의 욕구가 거기 그치지 않는다. 좀더 좀더 하는 욕망이 잘아나서는 덧 없는 경쟁을 일삼고 보기에도 흉하게 비대(肥大)해진 뒤 더욱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되지못한 잔꾀를 부리고 순전히 그 실력(?)으로 사는 자도 있다. 제가 할 일은 다하지 않고 잔 재주로 엮어둔 과실(果實)만을 따먹고 앉은 능청스런 자도 있다. 그런 부류의 유능(?)한 분들이 이 구차한 붓대노동자들을 볼 때, 특히 그 말로(末路)까지 다봤을 때, 그런게로구나 할른지 모른다. ▲ 고(故) 벨라도 형이 한평생 필봉을 통하고 생왈인으로서 아무 뒤지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실천의 인이었다. 그 단단한 몸집, 헐하게 먹고자는 품이 한 생때를 벗지 못한 것이기도 했다. 도무지 기쁨을 아끼는 일이었었다. ▲ 그의 성격처럼 그의 고집처럼 표연된 세상을 하직하고 만 것이다. 그로부터 어연 1년, 그간 아무것도, 참으로 아무것도 늘고 난 것이 없다. 얼되게 자만나는가 (가톨릭시보가 하면 툭툭 쓰러지는 이 더 많고 앞날도 어수선하기만 하다. 이네 뼈지리게 간 사람을 아쉬워하고 그가 있었은들 하며 애통할 뿐이다. ▲그가 가톨릭시보에 사표를 내고 떠나지 앉았다. 그때문에 지금 더욱 오히려 더 속속드리 살펴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소리가 말짱 사무쳐 치솟은 푸념이ㅏ고 하자, 당장에 생계의 길이 막연한 미망인, 그리고 병아리떼 같은 저 3남3녀를 다 어찌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