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물 보급주일(프레쓰 선데이=매년 6순주일, 금년은 2월 25일이다)을 맞이하는 2월은 가톨릭 출판물의 보급을 강조하는 달이다.
이제 새삼스럽게 가톨릭 출판물의 사명이나 그 시대적 요구를 장황히 늘어놓을 것은 없다고 본다. 매년 구호처럼 부르는 출판물 보급을 또 되풀이 하느니 보다는 우리는 제각기 지난날을 되살펴보고 앞날의 지표를 정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흔히 가톨릭 출판물이 부진(不振)한 까닭의 거의 전부를 신자들의 성의(誠意)에 귀착시키고 있는데, 거기에도 원인이 없지는 않겠으나 결코 큰 원인이 거기 있는 것이 아닌줄 안다.
그러면 가톨릭 출판물이 부진한 중요한 원인은 어디 있는가? 경향잡지(1962년 2월)가 지적한 바와 같이 『통계 상으로 보아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업(가톨릭 출판)이 실패되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가톨릭 출판물은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지만, 그것을 읽는 독자들의 수를 우리나라의 신자 수와 비교하면 도무지 만족할 수 없는 비율이 나타난다. 부끄럽고 걱정스러운 형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실정(事實)을 앞에두고 혹은 이런 실정을 토대로 해서 그 원인을 살피고 또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 동 지가 지적한 『실패』란 말이 그대로 해석된다면, 이 얼마나 중대한 일이겠는가? 그것은 좀 과장된 표현이 아닌가 하는 느낌은 주고있다 할지라도,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이런 뜻으로 동 논설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바이다. 또 한뜻으로는 『실패』했다는 반성과 겸손으로 앞날을 걱정할만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가령, 어느 책들이라고 지적하는 것을 피하거니와 그 내용이나 저자의 권위는 말할 것 없고 참으로 귀중한 그것이라고 한 수 밖에 없는 것이 있다. 이런 책들은 곧 한국 문화계에 큰 공헌을 하고 있어 길이 및을 잃지 않을 만한 것이다. 기런 경우에 한해서는 앞에 지적한 『실패』란 말은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책들이 나와도 잘 보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보급하는 방법에도 열성이 없다. 하는 의미로 또한 『실패』란 말을 적용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가톨릭 출판물을 두고 훌륭하다. 이만하면 서슴치않고 권면할 만하다 하는 것을 어디다가 표준을 들지 용이한 일은 아니다. 교회가 출판한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으로 읽혀져야 할 이유는 없다. 그중에는 학문을 닦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하거나 특성의 직업인에게만 요긴한 것도 있다. 따라서 일반 시민생활에 있어서는 극장표 한장의 값이 안될 수도 있는 법이다. 이런 예외의 것을 제외하고 극히 기본적인 출판물이라고 할까, 신자 전반에 꼭 필요한 것 성서, 기도서, 교리공부에 속한 책 및 신심생활, 전례, 교회생활에 관한 것들은 완벽을 기하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만 하다. 얼마전, 공과 내용에 관한 공박토론이 전개된 바 있다. 그 결과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우리가 쓰는 문답책만 하더라도 아직도 교육심리학적 견지에서 그리고 종교사회학적 견지에서 개정(改訂)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신심에 관한 것도 좀 더 현대적 감각을 채용할만 하다. 정기간행물 등도 더한층 독자층을 파고들어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먼저 기본적인 그것에 있어서 크게 반성하고 곧 정비(整備)에 착수해야 할 일인 줄 안다. 우리네 경제사정은 가톨릭 출판물이라 할지라도 가지수만 늘이고 양적으로 발전할 형편이 못되기 때문이다.
다음 번역에 치중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을 시인하면서 이 방면에도 재고(再考)할 여지가 허다한 것이다. 첫째 책의 선정(選定), 둘째 역자의 권위, 그리고 이 두 요건(要件)이 이곳 실정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 몇가지 지적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큰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은 그간 출판당무자들이 많은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경험은 권위있는 출판사를 구성할 가장 귀중한 재원(財源)인줄 확신한다. 다른 사업과 같이 자본만으로 황금은 만능이란 식의 논리가 출판에 한해서는 그대로 용납될 수 없다. 가톨릭 출판 종사자는 자기 사명에 투철할 것이며, 또 서로의 경험을 상호 교환할 수 있게 하여 『현대의 모든 그릇된 사조와 부패한 사회분위기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그리스도교적 정신으로 정화하고…… 교회와 더불어 생각하는 오롯한』(경향잡지 논설) 가톨릭 출판종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릇된 사조 그것을 그리스도교적 정신으로 정화할 만한 자기능력을 반성할 만하다.